키슬러가 조리개장치에 대해 보통 이상의 관심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무대디자인 경험을 토대로 ‘엿보기 장치’에 관한 독자적인 연구를 계속했다.
키슬러는 프로세니엄 아치의 상자형 무대공간을 부정하고, 오픈 스테이지의 일종인 <공간무대 Raumb웘ne>(1924)와 <유니버설 시어터 Universal Theater>(1959-62) 등을 디자인했다.
그러나 무대공간에 관한 키슬러의 관심은 공간적 확장에 의한 환경극장의 실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926년 위의 도표와 같은 「‘엿보기 상자’에 관한 공식」을 발표했었으며, 유진 오닐작 <황제 존스>(1924)와 사르트르 작 <출구 없음>(1946)의 무대디자인에서는 의도적으로 나팔관 모양을 한 상자형 무대장치를 시도했다.


‘금세기 예술’화랑을 위해 제작된 많은 컨셉추얼 드로잉 중에는 키슬러가 발명한 전시장치 이용방법을 제시하는 그림이 있다.
이것은 외부에 놓여진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장치인데, 드로잉을 보면 중앙에 구부러진 벽면이 설치되어 있고 그곳의 지지대에 걸려있는 회화작품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벽면 중앙에는 잠수함의 창문을 연상시키는 둥근 구멍이 있고 그 앞에는 잠망경과 같은 장치가 있다.
이 장치의 둥근 창을 통해 반대편의 작품을 보는 시선이 점선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것은 외부공간에 놓인 작품을 내부공간에 있는 사람이 보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른쪽에는 또 한 사람이 눈에 망원경을 대고 흥미롭게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이 드로잉의 오른쪽 하단에는 위쪽에 그려져 있는 스케치의 평면도가 약식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을 보면 외부공간이라고는 해도 틀림없이 바로 옆 공간을 말하며, 점선으로 표기된 부분에는 실내공간임을 암시하는 입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작품은 이 ‘엿보기 장치’가 붙어 있는 벽의 정면에 놓여 있어서 그 벽과 작품 사이도 구부러진 테두리에 에워싸여 있다.
이 드로잉을 뒤샹의 유작과 직접 연계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키슬러가 작품을 보기 위한 환경을 고려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엿보기 장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금세기의 예술’화랑에는 클레의 작품을 위해 고안된 일종의 ‘회화작품 자동검색장치’가 있다.
일곱 장의 그림으로 구성된 한 세트가 스포트라이트 조명에서 10분간 나타났다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그러나 감상자가 원할 경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보다 긴 시간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 하나의 ‘엿보기 장치’는 앙드레 브르통의 ‘포엠 오브제’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브르통의 작품 <배우 A갃의 초상 Portrait de l’acteur A갃.>을 조리개장치가 부착된 상자 안에 세트하고 관객은 이 상자에 달린 레버를 조작해서 안에 있는 작품을 들여다본다.
키슬러는 이 장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실과 비전의 상관관계를 촉진시키고, 특히 이미지를 몽롱한 비전으로 변형시킨다.16


키슬러가 조리개장치에 대해 보통 이상의 관심을 표명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조리개 장치’란 카메라의 아이리스 셔터(Iris shutter)를 말한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동공 개폐원리와 같은 방법으로 카메라 안에 입력되는 외광(外光)의 양을 제어하는 장치이다.
인간의 눈에는 동공 이외에도 상하로 움직이는 눈꺼풀이라고 하는 빛의 제어장치가 있어 이중으로 제어하고 있는 셈이다.


키슬러는 1929년에 완성한 <필름 길드 시네마>의 <스크린 O 스코프 Screen갣갨cope>라고 하는 장치와, 그 이전에 실현한 의 무대장치에서 원형 스크린 등을 만들어 조리개 장치를 부착하고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영상의 크기를 핀볼과 같이 작은 것에서부터 화면 전체에 가득 차는 커다란 사이즈까지 연속적으로 변형 가능하게 했다.
이 장치의 움직임은 관객에 대한 광량(光量)의 조정 및 이미지 양의 변화를 가져온다.
눈꺼풀의 개폐와 비슷한 장치는 사르트르의 <출구 없음>에 적용되었는데, 이 경우에는 사람 눈꺼풀의 개폐기능과 동일하게 외부환경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보의 양을 제어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키슬러가 왜 사람의 눈 및 그 주위의 근육구조를 자신의 작품 컨셉에 응용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먼저 사람에게 구비되어 있는 신체기능은 어떤 것이든 외부환경과 연계시키기 위한 일종의 제어장치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환경은 사람의 제어장치의 한계를 넘어서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제어기구로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미디어를 들고 있다.
이것을 키슬러의 ‘디자인 상호관련’이론에 대입시켜 생각하면 이상의 세 가지 요소는 연속적인 상관관계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영화나 무대 위에 전개되는 이미지를 볼 경우에도 이같이 눈이 지니고 있는 기능과, 영사장치나 스크린의 기능 등이 상호 관련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으며, 무대의 막도 같은 논리에 의해 사람 눈의 기능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이 같은 사실이 인간이 발명한 그 밖의 시각전달 미디어의 구조에도 적용되어 있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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