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의 발상은 영상을 공중에 매다는 것과 같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앞서 키슬러와 뒤샹의 공통분모로 거론한 두 가지 컨셉도 인간과 환경의 상호관련성에 주목하여 살펴보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주어진 육체적 조건에 따라 사물을 본다는 것은,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장치를 보는 것과 같다.
사람은 두 개의 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사이를 두고 열려 있는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외부환경을 들여다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실을 본다는 것은 외부환경과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그 밖의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마치 공중에 매달린 채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기 위한 장치’를 움직이는 것과 같이 불안정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들여다본다’는 것은 외부환경이나 타인의 눈으로부터 일단은 자신을 차단시키고 사물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사물을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자신이 놓인 환경과 보는 대상물의 환경을 차단시키는 것이 된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항상 보는 사람 개인의 시각적 세계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환경 속에서 사물을 본다는 행위는 먼저 ‘공중에 매달린 채 바라보는’ 방법과 ‘들여다본다’는 방법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을 왕래하는 것일 것이다.
뒤샹과 키슬러, 그들이 보여준 인간의 ‘본다’는 사실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
그리고 그것을 집요하리만큼 작품을 통해 구체화하고자 했던 태도.
그 배경에는 20세기에 발생한 기술적 발전과 그로 인해 파생된 시각세계의 확장을 들 수 있다.
키슬러는 만년에 이르러 영화 상영을 위해 하늘의 구름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모홀리-나기가 빛의 스펙터클을 구상한 바와 같이 키슬러도 외부환경 전체를 이용한 영상 프로젝션을 생각했던 것이다.8)
키슬러의 발상은 영상을 공중에 매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20세기 초 유럽이 꿈꾸었던 ‘예술적 축제’를 구체화하는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키슬러는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이 같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접목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는 메사추세스 공과대학(MIT)에서 시각예술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오토 피네가 최근 기획한 프로젝트 센터 빔(Center Beam)에서 증기로 만든 구름에의 영사, 홀로그래피, 레이져 빔 등을 이용한 3차원 영상을 실험했다.
이것도 키슬러가 꿈꾸었던 시각적 축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키슬러의 영향을 받은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키슬러와 같은 비인 출신의 건축가 센트 프로이언을 들 수 있다.
프로이언은 3차원 영상인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환영적 건축 Visionary Architecture>(1971)를 제안했다.
이것은 의식의 실체화라고 할 수 있는 건축을 홀로그래피라는 허상형식을 빌어 존재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이것도 ‘공중에 매달린 건축’ 또는 ‘시각 상(視覺上)의 건축’에 대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이것도 키슬러가 생각했던 ‘비전 머신(Vision Machine)’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시각적 축제공간의 실례이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