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들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신앙
제1편
아브라함 이야기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르 사람 아브라함의 가계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11:26-29)
아브람(Abram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의 가계는 이러하다.
아브람은 힘 있고 번영하던 도시 우르(Ur) 사람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생활을 했다.
기원전 1800년경 아마 염소 털로 만들어진 훌륭한 천막에서에 태어나 지구라트(Ziggurat) 근처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800년 전에 시작된다. ]
우르는 수메르(Sumer)의 수도였다.
우르 말고도 메소포타미아에는 에리두(Eridu)와 우르크(Uruk), 닙푸르(Nippur)의 대도시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우르의 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갈대아(Chaldees)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수메르를 가리키는 말인데 “평원의 사람 people of the plain”이란 뜻이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란 말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을 뜻한다.
반달처럼 생긴 비옥한 평원에서 약 5천 년 전에 문명이 발흥했는데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 가운데서도 수메르의 문명은 빼어나다.
수메르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와서 정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청동기시대(기원전 3500년경)에 북쪽에서 내려와서 산간지대에 살던 이란 사람들로 짐작된다.
그들은 기원전 3200년경에 이미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수학이 발달하여 기본 숫자를 6까지 사용했다(오늘날 우리가 10까지 사용하는 것에 비해서).
그들은 물레를 사용하여 질그릇을 만들었고 격언이나 현자들의 말을 기록하여 법으로 사용했다.
또한 노예의 노동력을 사용했으며 전쟁포로들을 종으로 삼았다.
우르는 오늘날 이라크 남단과 쿠웨이트 일대로 페르시아 만 근처, 바스라(Basra)에서 북쪽으로 120마일 떨어진 기차역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를 말한다.
오늘날 역 주변은 광활한 사막으로 에워싸여 적막하다.
마치 거대한 사막의 접시 중앙에 역장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5천 년 전 이 곳에는 오아시스가 많았고 비옥한 땅이 즐비해 농경산업이 발달했다.
보리와 밀, 무화과가 대량으로 생산되었으며 맥주문화도 발달했다.
근래 기원전 2700년 또는 2600년 것으로 보이는 우르 왕조의 유물과 바빌론 왕조의 유물들이 계속 출토되고 있는데 맥주잔에 탐스러운 보리이삭이 그려져 있다.
이들 유물들은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신상, 풍속도, 그리고 점토판에 기록을 새긴 비문들도 출토된다.
우르 사람들은 기원전 2100년경 벽돌을 사용해서 높이가 91.5m나 되는 계단식 8층탑을 건립했는데 맨 아래 정사각 기초구조물의 길이는 무려 91m에 달했다.
야곱이 꿈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다란 사다리를 보았다고 했는데(28:12) 이 탑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늘에 닿는 계단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수학과 공학이 발달하지 않고서는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계단식으로 높아지는 구조물에는 나무를 심었다.
하늘에 닿을 듯한 탑 꼭대기는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장소였다.
우르 사람들은 여러 신을 섬겼는데 달신 난나(Nanna) 외에도 태양신과 별신을 섬겼다.
그들이 건립한 지구라트는 오늘날 탑의 기초만 남아 있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왕 나보니두스(Nabonidus)가 “지구라트는 아주 낡았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때부터 이미 낡은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Terah)는 가족을 이끌고 우르를 떠나 하란(Haran)으로 가서 정착했다. (11:31-32)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하란은 오늘날 터키에 속하는데 시리아 국경에 인접해 있다. 하란은 미탄니(Mitanni) 왕국에 속한 도시였다.
미탄니를 후리(Huri)라고도 하는데 후리안족(Hurrians) 또는 호리족(Horites 또는 Khurites)이 살던 나라였다.
미탄니 사람들은 아시아로부터 온 인도-유럽인(Indo-European)으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위쪽에 정착했다.
하란은 대상들이 만나는 상업도시로 우르와 견줄 만한 대도시였다.
이곳의 특산물로는 낙농산물, 고기, 우유, 버터, 치즈, 모피 등이 있다.
무화과가 많았고 포도주는 물보다 많다고 할 정도로 포도농사가 잘 되었다.
지금도 이곳 지하에서는 많은 왕궁의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된다.
하란은 동남쪽 페르시아만을 통해 들어오는 인도의 상품, 동북쪽 서역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오는 중국의 상품, 서유럽으로 오가는 상품, 남부 이집트로 오가는 상품을 교역하는 대상들로 붐비는 화려한 도시였다.
아브람의 가족은 유목민이었고 하란은 유목민에게 적합한 곳이 못 되었다.
하지만 대상들을 상대로 특산물을 팔아 돈 벌기는 쉬운 곳이었으므로 아브람의 가족은 아마 그런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을 것이다.
아브람에게는 종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재산을 관리하고 양치는 일을 돌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