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삭의 장자 에서는 40세 되던 해 헷족(Hittite) 브에리(Beeri)의 딸 유딧(Judith)과 헷족 엘론(Elon)의 딸 바스맛(Bashemath)을 아내로 맞았다(창세기 26: 34-35).
헷족은 기원전 1500년경 오늘날 터키 지역에 왕국을 건설한 민족이다.
헷 왕국의 수도는 하투사스(Hattusas)로서 오늘날 앙카라(Ankara)근처 보가즈칼레(Boghazkale)였는데 이스라엘 사사들이 활약하던 기원전 1200년경에 멸망했다.
헷족은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조상이 아리안 족이라 배를 타고 가나안으로 왔다.
헷족이 가나안에 거주하던 족속들 중 하나임은 출애굽기 3:8, 23:23과 여호수아 9:1에서 알 수 있다.


창세기를 읽는 분들은 야곱에 대한 리브가의 편애와 야곱의 교활함에 분개할 줄 안다.
그리고 에서가 어리석은 사람이긴 해도 그의 편에 서서 동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역사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유대인은 종족을 보존하고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혼혈을 막았으며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과의 결혼을 엄격하게 금했다.
아브라함 가계에서 장자로 태어난 에서가 헷 여인을 둘씩이나 아내로 맞이한 것은 이삭과 리브가로부터 도저히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었다.


에서는 건장하고 활도 잘 쏘고 수렵을 좋아한 호탕한 사내였다.
에서가 두 이민족 처녀를 데리고 와서 부모의 결혼승낙을 받으려고 했을 때 이삭은 물론 리브가에게도 여간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노발대발하며 에서를 꾸짖었으며 두 처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나안 사람들은 유대인을 떠돌이라고 멸시했으니 그들을 어떻게 며느리로 맞고 한 장막에서 함께 살 수 있겠는가! 에서가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맞자 리브가는 그를 맏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리브가는 야곱만은 헷 족속과 결혼시키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리브가의 불평을 들은 이삭은 “하지만 어찌 하겠소. 우리 동족은 모두 하란에 있고 그놈은 장가들 나이가 되었으니!” 하고 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삭은 늙고 눈이 어두워져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루는 이삭이 에서를 불러 말했다. (27:1-4)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비록 에서가 이방인을 아내로 맞았지만 그에게 장자의 기업을 넘겨주고 앞날을 축복해 주기 위해 사냥해서 요리를 만들어 오라고 분부한 것이다.
이삭은 그날 에서를 타일러서 이방인의 종교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했다.
에서는 아버지의 분부대로 활과 살을 메고 들로 향했다.


그런데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리브가가 엿들었다.
리브가는 이방인 며느리가 꼴도 보기 싫은데 남편이 에서에게 장자 몫의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자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분개했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에서 대신 야곱이 가계를 잇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차라리 눈이 어두운 남편을 속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사기극을 연출하게 되었다.


에서가 들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속삭였다. (27:6-13)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 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 두려웠지만 어머니가 시키는 데다가 장자의 권리를 완전히 해둘 절호의 기회였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야곱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끌고 왔다.
리브가는 남편의 입맛을 알기 때문에 별미의 요리를 하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브가는 집에 있는 에서의 사냥복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꺼내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 가죽을 매끈한 손과 목에 감아준 후 준비해 놓은 별미와 구운 빵을 야곱의 손에 들려주었다.


야곱은 음식을 들고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27:18-21)


“내 아버지여”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가까이 가니 이삭이 그를 만지며 말했다. (27:22)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이삭은 만져 본 손에 털이 나 있었으므로 능히 분별하지 못했다.
이삭은 말했다. (27:24-25)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러하니이다”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이삭은 야곱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다.
그리고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고 했다.
야곱이 입을 맞추자 이삭은 그 옷의 향취를 맡은 후 그에게 축복했다. (27:27-29)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막 나오는데 형 에서가 들에서 돌아왔다.
에서의 손에는 별미의 음식이 들려 있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로 가서 말했다. (27:31-33)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너는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 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에서는 아버지의 말에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27:34-40)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 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입을 다문 채 말이 없는 이삭 앞에서 에서는 너무도 억울하여 목을 놓아 울었다.
그러나 이삭은 말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말이 곧 법이었기 때문에 야곱이 자기를 속였더라도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이삭이 늙었다고 해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을 구별하지 못했을까?
마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 고대 유대인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삭은 자기가 속는 줄을 알았지만 아내의 말대로 이민족 여자와 결혼한 에서에게 장자의 기업을 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리브가의 지혜가 더욱 건설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슬플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떠돌이 신세로 살게 되어 유대인의 금기인 이방인 여인을 며느리로 맞고 그로 인해 에서의 장자자격까지 잃게 했는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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