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약탈과 학살극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세겜에서 일어난 사건은 야곱 역사에 가장 치욕적이고 배신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이 이 같은 사건을 남김없이 기록한 것을 보면 과연 선민의 자격을 갖춘 민족이란 생각이 든다.
여태까지 보아온 대로 이스라엘 사람은 조상의 옳은 일만을 골라서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관은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스란히 후세에 전하는 것이었다.
이는 조상들의 불의한 일들도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려는 아량으로 볼 수 있다.
레아가 낳은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그 고장 여자들을 보려고 외출했다가 세겜(Shechem)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겜은 그때 그 지방의 원주민 히위 족(Hivite)의 추장 하몰(Hamor)의 아들이었다.
세겜은 디나에게 사랑을 호소하고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야곱이 딸 디나가 강간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의 아들들은 들에서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
야곱은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아들의 청혼을 요청하러 왔을 때는 이미 야곱의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와 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다.
세겜이 감히 야곱의 딸을 겁탈하다니!
뻔뻔스럽게 이스라엘을 욕보이다니!
가문에 대한 수치로 이렇게 화가 잔뜩 나 있는데 하몰이 그들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34:8-10)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련하여 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 야곱과 아들들에게 말했다. (34:11-12)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수응하리라”
누이 디나가 욕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 세겜과 하몰에게 대답했다. (34:14-17)
“우리는 그리 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하몰과 세겜 부자는 야곱 부자가 제시한 조건을 수락하고 세겜은 서둘러 할례를 받았다.
세겜은 진정으로 디나를 사랑했다.
하몰은 그 고장에서 가장 세도가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하몰과 세겜 부자는 성문에 나가 자기들이 다스리는 주민들을 향해 공포했다. (34:21-23)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로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취하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에 모든 남자가 그들의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들의 생축과 재산과 그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 말대로 하자 그리하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리라”
성문으로 나온 모든 주민은 하몰과 세겜의 말을 따라 그날로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아직 고통스러워하며 거동이 불편한 틈을 타 야곱의 아들 중 디나의 친오라비인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빼들고 당당하게 성 안으로 들어가서 모든 남자들을 죽였다.
하몰과 세겜도 칼로 쳐서 죽이고 세겜의 집에서 디나를 데리고 나왔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죽은 자들에게 달려들어 시체를 털고 온 성을 약탈했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비한 배신인가!
이 같은 야만적인 학살은 이스라엘 역사의 치욕으로 남는다.
딸을 욕보인 죄 값이라고는 하지만 야곱다운 교활한 방법이었다.
야곱은 딸의 강간을 빌미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그들의 양떼, 소떼, 나귀 떼뿐만 아니라 성 안의 모든 것들을 약탈했다.
또한 재산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의 자식들과 아낙네들도 사로잡았다.
창세기에는 야곱이 이 같은 행위에 대해 시므온과 레위를 불러 나무라면서 “너희 때문에 나는 이 지방에 사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인들에게 상종할 수 없는 추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수가 얼마 되지 않는데 그들이 합세하여 나를 친다면 나와 내 가족은 몰살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의 허락 없이 이 같은 큰 일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어쨌든 야곱은 약탈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