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소를 거절하는 이삭과 장자의 축복을 받는 야곱


조토는 두 그림을 마주 보는 양쪽 벽에 각각 그렸다.
그는 ‘에소를 거절하는 이삭Isaac Rejects Esau’을 정확한 기하와 공간을 나타내는 상자 모양으로 화면을 구성한 후 눈이 먼 아버지 이삭을 아주 작은 방의 커다란 나무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모습으로 그렸다.
새로운 방법의 상자 모양의 화면은 토리티Torriti의 ‘가나의 혼인식Marriage at Cana’에서 발견되는데 조토의 것과 달리 입체감이 없이 평편하다.
커튼이 섬세하게 묘사된 막대기에 달려 방 전체 벽을 장식하고 관람자가 방안의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커튼을 열어 놓았다.
앞으로 나온 부분은 밝지만 방 안쪽은 어두운데 그늘지기 때문이다.


‘장자의 축복을 받는 야곱Jacob Receives the Blessing of the First-Born’에서 그는 이삭을 좀더 위엄을 나타낼 수 있도록 구성을 약간 달리 했으며 기하적 형태로 공간이 훨씬 열려 있도록 했다.
커튼은 당시 유행하던 우아한 디자인의 것으로 장식적인 효과를 높여 주고 명암에 의해서 공간을 안으로 한정시킨다.
이는 예술가가 구도에 관해 충분한 지식이 있음을 알게 해주고 또한 건축에도 관심이 많음을 알게 해준다.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데 침착한 제스처와 완벽한 모델의 모습은 그가 고전주의 방법을 따라 그렸음을 알게 한다.
위엄을 나타낸 이삭의 모습은 로마인의 석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조토는 각 모델의 동작을 통해서 관람자가 그들의 대화를 분별할 수 있도록 했고 모델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나타나도록 세심하게 묘사했다.
‘장자의 축복을 받는 야곱’을 보면 조토가 이삭으로 하여금 야곱의 손을 잡게 함으로써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이 있음을 인정하고 리브가가 커튼을 약간 제치고 이 장면을 바라보도록 했다.
조토의 자연주의적 관찰이 야곱의 얼굴과 반쯤 감긴 눈으로 이삭이 눈을 멀었음을 나타낸 데서 발견된다.
리브가의 이마에 나타난 주름은 그레고리의 이마에 나타난 주름과 같아 같은 화가의 솜씨임을 알게 해준다.


이 두 그림에서 빛이 정면에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두 그림 사이 위에 있는 작은 창으로부터 빛줄기가 내려 와 닿는다.
왼쪽에 있는 ‘에소를 거절하는 이삭’에서 오른쪽으로부터 와 닿는 빛을 볼 수 있고 ‘장자의 축복을 받는 야곱’에서는 반대 방향에서 빛이 와 닿는 것을 볼 수 있다.
빛에 의한 명암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이 ‘에소를 거절하는 이삭’에서 에소의 왼팔과 왼손 손등이다.
조토는 밝은색 붓질로 빛이 와 닿았음을 묘사했다.


두 그림의 주제는 창세기의 에피소드에서 구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이삭이 늙어 눈이 어두워졌다. 이삭은 장자 에서에게 자기가 언제 죽을 런지 모르니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라며 그것을 먹고 복을 빌어 주겠다고 말했다.
쌍둥이 작은 아들 야곱을 편애한 리브가가 남편의 말을 엿듣고는 야곱에게 살진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끌어 오면 별미를 만들어 줄 터이니 그것을 아버지께 갖다 드리고 에소가 받을 아버지의 복을 가로채라고 했다.
야곱이 형의 몸에는 털이 많아 아버지가 만지면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느냐고 말하자 리브가는 에소의 옷을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 가죽을 매끈한 손과 목에 감아 주어 몸에 털이 난 것처럼 꾸몄다.
이삭은 알고 속았는지 모르고 속았는지 야곱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했다.


“아! 내 아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야훼께 복 받은 들 향기로구나.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신 이슬로 땅이 기름져 오곡이 풍성하고 술이 넘쳐 나거라.
뭇 백성은 너를 섬기고 뭇 족속들은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는 네 겨레의 영도자가 되어 네 동기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복을 빌어 주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야곱이 아버지의 복을 받고 막 물러나왔을 때 형 에소가 사냥에서 돌아 왔다.
에서는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서 복을 빌어 달라고 했다.
이삭은 방금 복을 빌어 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은 야곱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은 구두로 한 약속을 법으로 여겼기 때문에 한 번 약속하면 변경시키지 않았다.
장자의 축복이란 재산을 다른 형제에 비해 두 배로 물려받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소는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나를 두 번씩이나 뒷발질하라고 그 녀석의 이름이 야곱이었던가? 저번에는 내 상속권을 빼앗더니, 이번에는 내가 받을 복마저 가로채는구나!”

이삭이 에소에게 말했다.

“도리에는 어긋나지마는 나는 야곱을 너의 상전으로 삼고, 모든 동기를 그에게 종으로 주었다. 그에게는 곡식과 술도 떨어질 날이 없을 것이다. 에서야, 이제 와서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느냐?”

에소는 목을 놓아 울면서 아버지가 죽게 되면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유랑을 떠나게 된 것은 에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였고 유랑생활은 그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새 인간이 되어 나라를 건국하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창세기 27:1-45).


교회의 박사들과 이삭 이야기가 조토의 작품이냐 하는 학문적인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탈리아 학자들과 그 밖의 학자들이 그의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 중 로마니니Romanini는 이삭의 이야기를 아놀포Arnolfo의 작품이라고 1987년에 주장했고, 브랜디Brandi는 1983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로마인 화가의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 밖의 성서적 주제의 그림들은 조토의 방법으로 로마인이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토드Thode가 1885년 처음 조토의 작품이라고 주장한 이래 짐메르만Zimmermann(1899), 토스카Toesca(1927), 베렌슨Berenson(1932)과 근래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조토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틴토리Tintori와 마이스Meiss는 1962년 조토가 아시시에서 프레스코를 그릴 때 새로운 기법을 사용했음을 지적했다.
새로운 기법이란 하루에 그릴 만한 면적의 벽을 물에 젖게 한 후 색소를 빠르게 바르는 방법으로 조르나테giornate라고 하는데 마른 플래스터에 그려서 패널에 그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과거의 폰타테pontate 방법과 비교가 된다.
조토가 사용한 새로운 방법은 이탈리아 프레스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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