켐스콧 출판사는 존속한 8년 동안의 기간에 53권의 책을 발간했다
모리스를 후원한 사람들이 주로 고딕부활을 추진하던 건축가들이었으므로 모리스상회가 스테인드글라스를 전문으로 제작한 건 당연했다.
로제티, 번-존스, 브라운 모두 창문을 디자인했다. 번-존스는 특히 이 일에 숙련되어 있었고, 1857년에 이미 1850년 토머스 스티븐스Thomas Stevens의해 설립된 브래드필드 대학Bradfield College을 위해 라파엘전파주의 창문을 디자인한 적이 있었다.
그 뒤에도 노동자 대학에서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가르쳤으므로 모리스상회가 설립될 즈음에는 이 분야에서 경험 있는 장인이었다.
그는 모리스가 제작한 창문의 인물들을 책임졌으며, 그의 작품을 영국에 있는 많은 교회에서 볼 수 있다
모리스는 1871년에 로제티와 함께 공동으로 옥스퍼드에 있는 켐스콧 저택Kelmscott Manor을 빌렸다.
템즈 강가에 위치한 켐스콧 저택은 1892년에 인쇄와 책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서적애호가인 모리스가 설립한 켐스콧 출판사Kelmscott Press가 발간한 <미지로부터 온 소식 News from Nowhere>의 권두화로 소개되었다.
켐스콧 저택은 로제티가 공동의 거처를 떠난 1874년 이후부터 1896년까지 모리스의 저택으로 사용되었다.
1600년경 중세의 평면도를 바탕으로 건축되고 17세기 후반에 측면이 확장된 이곳을 모리스는 휴양소로 사용했다.
그루지아 양식의 이 저택은 중세양식으로 제작된 무거운 가구, 직물로 짠 커튼, 꽃무늬 벽지로 장식되었다.
마구간과 마차를 두는 헛간에는 카펫 제작소가 설치되었으며 벽걸이용 태피스트리도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켐스콧 저택에 대한 애착이 유달랐던 그는 1878년에 런던의 해머스미스Hammersmith에 집을 산 뒤 ‘켐스콧 하우스’라고 불렀다.
켐스콧 출판사는 개인 인쇄소의 선구자가 되었다.
중세의 채색필사본을 참고로 하여 북 디자인과 출판기술을 혁신시키고자 한 모리스는 장식적인 글자체와 가장자리 장식, 활자서체를 디자인했으며 특히 중세의 고딕활자를 부활시켰다.
켐스콧 출판사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중세 시문학자 제프리 초서의 작품집 <켐스콧 초서 The Kelmscott Chaucer>였다.
556페이지 분량의 이 책에는 번-존스가 그린 86점의 목판화와, 모리스가 가선장식(책 가장자리 장식), 표지, 장식글자를 위해 그린 600점이 넘는 디자인을 포함되었다.
제작하는 데 5년이 소요된 <켐스콧 초서>는 가장 비용이 많이 든 프로젝트였다.
<켐스콧 초서>는 모리스가 타계하기 몇 달 전인 1896년 10월 3일에 출간되었다.
모리스의 중세주의에는 낭만적 요소도 있었고, 이런 요소는 그와 공동으로 일했던 라파엘전파 미술가들에게 좀 더 현저한 특징으로 그들이 디자인 분야에서 한 작업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1892년 켐스콧 출판사에서 다시 찍어낸 모리스의 사회주의 산문 <존 볼의 꿈 A Dream of John Ball>(1886-67)의 첫 페이지는 그가 지속해온 공동 작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 모리스는 본문과 레터링을 맡았고 번-존스는 그것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삽화를 담당했다.
<존 볼의 꿈>에서 근대의 화자는 자신이 1381년 농민혁명 시대에 켄트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농민혁명은 1351년에 의회가 농업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노동자조례를 통과시킨 데 대한 불만으로 1381년 와트 타일러Wat Tyler가 잉글랜드 남부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반란의 주도자 와트 타일러가 살해됨으로써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농노제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존 볼의 꿈>의 본문에는 농민들이 외치던 구호인 ‘아담이 땅을 파고 이브가 실을 잣던 시절에 누가 신사였는가?
When Adam delved and Eve span/ Who was then the gentleman?'가 적혀 있다.
켐스콧 출판사는 존속한 8년 동안의 기간에 53권의 책을 발간했다.
이 출판물 가운데 모리스의 첫 번째 저작인 <반짝이는 평야에 관한 이야기 The Story of the Glitting Plain>를 포함하여 그의 저작만 23권, 중세 작가들의 저작 22권 그리고 나머지는 동시대 서정시인들의 작품집이었다.
모리스는 근대문명에 대한 증오에 이끌려 정치활동에도 관여했다.
그는 1883년에 사회주의민주연맹에 가입하고 ‘사회주의자를 위한 노래’를 썼다.
1882년에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1818-83)의 <자본론 Das Kapital>(1867)을 읽고 자신의 신념이 그 책에서 증명된 것을 발견했다.
현재 <자본론>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마르크스가 자신의 손으로 간행한 것은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1867)뿐이며 그가 타계한 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1820-95)가 유고를 정리하여 1885년에 제2권 ‘자본의 유통과정’, 1894년에 제3권 ‘자본제적 생산의 총 과정’이 출간되었다.
<자본론>은 시민사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의도한 것이다.
모리스는 2년 동안 전국을 여행하며 보다 인간적인 미래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강연했다.
그는 급진주의적 성향 때문에 마침내 체포되었지만 예술가로서 그리고 문학가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곧 석방되었다.
그는 1890년대에도 정치적 활동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