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마당

결론: 욥의 회개와 하나님의 축복 │ 42장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이니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 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 함이니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15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16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좲 해설 좳

1-6절의 욥의 응답으로 욥기는 사실상 결론이 났다.
이후 구절들은 훗날 누군가에 의해 삽입되었음이 분명하다.
이후의 구절들은 오히려 이 책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인과응보 신학으로 마쳐졌기 때문이다.
삽입한 사람은 욥의 비참함을 물질로 보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욥은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라고 고백하였는데 하나님의 실재를 깨달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은 최상선(最上善)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선지자 호세아는 이 점을 강조하였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6)


하나님께서는 전장에서 고대의 놀라운 사건들을 욥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스스로 영광되셨으며, 욥의 질문에 대부분 대답하지 않으시고 욥 스스로 자신에게서 창조주의 모습을 보도록 하셨다(1절).
욥은 하나님을 보자 자신이 무지하기 짝이 없는 피조물로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인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생명을 만들어 내실 수 있는 실재적 절대자이심을 알게 되었다.
욥은 자신이 무와도 같다고 인식하였는데 이는 그가 무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과정에 있음을 깨달은 말이기도 하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가 무한하시다는 점을 깨달았다(2절).
그는 거듭해서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다(3절).


4절은 2절 시작에 삽입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 편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욥은 하나님 뵙기를 갈망한 적이 있었는데(19:26) 궁극적으로 뵙는 체험을 했다(5절).
뉘우친다는 그의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욥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6절).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과 실재로 가능한 절대자로서의 존재에 대해 자신이 무에 가까운 피조물로서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변화라 할 것이다.


별도로 추간된 7-17절에는 욥이 첫 장에 소개된 대로 온전하고 신실한 신앙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마지막 매듭을 둘로 나눠서 고찰할 수 있는데 첫째, 10-17절로 욥이 다시 행복을 되찾는 점이며 둘째, 7-9절로 욥과 친구들의 관계가 시적으로 매듭지어지는 점이다.
이런 매듭은 2장 11-13절에 나타난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온 친구들의 방문에 대한 매듭이다.


욥의 순전함은 하나님에 의해서 공공연하게 증거되었으며 세 친구들은 반대로 위선자들로 규정을 받고 말았다.
욥이 중재자가 되어 친구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 가운데 대변자와도 같은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셨는데 이런 직접적인 대화는 당시 신화에 흔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욥과 달리 그들이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셨다.
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친구들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만한 것이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비난은 성난 욥의 간청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전통주의 신학의 가르침보다 욥의 혁신적 신학이 더욱 옳았음을 의미한다.


8-9절, 과거에 욥이 대제사장처럼 대신해서 기도와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것과(1:4-5)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서 욥은 세 친구들을 위한 번제의 역할을 맡았다.
이는 이사야가 53장에서 말한 고난 받는 종과도 같은 역할이다.
당시 사람들은 동물을 잡아 불에 태워서 연기로 하나님께 바쳤다.


욥에게 물질적 축복이 내려진 것은 욥이 받은 고뇌와 고통에 대한 배상이다.
11절은 아마 본래 전설에서 친구들 대신 동생과 누이 그리고 친지들이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끝맺는데 불필요한 구절로 여겨진다.
욥이 다시 받은 물질적 축복은 첫 재산의 두 배이다(1:2-3).


140세까지 살았다는 욥의 장수는 위대한 부권의 가장들과 같다(창세기 25:8).
욥의 재산이 두 배로 는 것과 마찬가지로 욥의 수명도 평균수명 70살의 두 배로 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균수명이란 일반인들의 평균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말한다.
새 영어성경의 10절 참조에는 욥의 아들들도 두 배로 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에 나타난 셉투아진트(Septuagint) 전설에는 욥이 에돔 왕국을 건설한 창시자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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