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중세의 분류



고대의 예술 분류는 중세에 이론적·실천적으로 사용되면서 예술을 실천적 이성의 한 상태로 간주되었다.
아퀴나스는 예술을 “이성의 올바른 배열”로 정의했으며,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1266-1308경)는 “제작되어야 할 것에 대한 올바른 관념” 혹은 “참된 원리들에 근거한 제작능력”으로 정의했다.
중세에 예술은 고정된 규범과 길드의 규칙에 의해 지배되었는데 후고Hugh of St. Victor(1096-1141)는 『학습론 Didascalicon』 2장에서 “예술은 규칙과 법규들로 되어 있는 하나의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적었다.
예술이라면 교양예술을 뜻하게 되었는데 일곱 개의 교양 과목은 논리학, 수사법, 문법, 산술, 기하, 천문학, 음악 등이었다.
이것들은 오늘날 예술이 아니라 학문이다.

중세에는 비교양 예술에 대한 관심도 컸으며, 이런 예술을 ‘기능술’로 불렀다.
기능술은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해 전통적인 일곱 개의 교양과목과 균형을 맞추어 일곱 가지로 구분되었다:
의복공급lanificium, 건축을 포함하여 주거지와 연장공급armatura, 농작술agricultura, 식품공급venatio, 항해술navigatio, 의술medicina, 오락제공theatrica. 이들 가운데 armatura와 theatrica, 즉 건축과 오락이 오늘날의 순수예술에 가깝다.

음악은 수학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교양예술로 간주되었지만 시는 일종의 철학이나 예언력, 기도문 혹은 고백문 같은 것이었으므로 전혀 예술로 취급되지 않았다.
회화와 조각은 분명히 법칙을 이용하는 기술들이었지만 교양예술로도 기능술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타타르키비츠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회화와 조각은 유용할 때만 인정받는 기능술로 분류되었고 회화와 조각의 실제적 유용성은 대단치 않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는 염격한 의미에서 우리가 예술로 간주하는 것이 중세에는 예술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었다는 그간의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클레니우스R. Goclenius(1547-1628)가 1607년에 출간한 『철학사전 Lexicon Philosophicum』에 예술이 건축과 같은 ‘주요’ 예술과 회화와 같은 ‘부수적’ 예술로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예술에 대한 고전적 분류가 르네상스 시대에 그대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에 넓은 의미의 예술들 중 회화, 조각, 시, 음악 등과 같은 예술들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므로 분리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싹텄다.
다만 명확하게 표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순수 혹은 아름다운이라 칭하는 예술과 그 밖의 예술을 분류하는 데는 실로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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