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키비츠가 규정한 예술
시대에 따라서 미학자들에 따라서 미의 개념이 다르게 언급되는 데서 미의 개념이 정의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으로부터 비롯된 미의 관념은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유일한 예술론으로 매우 소중하게 받아들여졌다.
미가 더이상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되지 못한 것은 에드문드 버크Edmund Burke에 의해서였다.
버크는 이전에 미의 개념에 포함되지 못했던 숭고sublimity의 개념을 1757년 미학적 논리에 등장시켜 숭고가 개념적으로 미에 배타적이면서 본질에 대조를 이룬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미 개념을 부정하고 미를 숭고에 상응하는 또 다른 류의 경험으로 보았다.
칸트는 미에 대한 버크의 비판에 매혹되어 숭고를 예술의 중요한 개념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버크와 칸트 두 사람의 혁명적 사고가 유럽인들로 하여금 미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두 사람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려고 한다.
숭고한 감정의 영역이 확장되자 예술의 정의에 대한 그리스인의 사고를 비판하며 새롭게 고찰하는 시도가 가능했으며 리오타르는 숭고한 감정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색으로 지적했는데 그에 관해서도 나중에 언급하려고 한다.
예술은 정의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학자들이 정의를 시도해왔다.
예술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미와 숭고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것들에 대한 형식들은 어떠한지, 이것들과 관련된 매체와 재료들이 규정되어야 하는데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술에 대한 정의는 차치하고라도 미술사에 나타난 하나의 이즘ism에 대한 이해에서조차 견해를 달리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술철학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학자들이 미술에 대한 정의를 시도했으며 여전히 시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가정으로라도 정의가 정립되지 않으면 예술에 관한 이론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적 사고 체계는 정의가 아니라면 가정으로라도 전제가 있어야 그 다음을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타타르키비츠Wladyslaw Tatarkiewicz(1886-1980)가 『미학의 기본 개념사 A History of Six Ideas: An Essay in Aesthetics』에서 내린 정의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무수한 기능을 가진 모든 종류의 예술을 다 수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개방되어”1-1) 있는 정의를 만들고자 시도했다.
타타르키비츠는 정의했다.2)
예술은 사물을 재현하거나 형식을 구축하거나 경험을 표현하는 의식적 인간 행위지만 이런 재현, 구축, 혹은 표현의 산물이 기쁨이나 감동,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에 있어 그러하다.
이 정의를 그는 문법적으로 재배열한 후 미술품에 대한 정의로 제시했다.3)
미술품이란 기쁨이나 감동,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사물을 재현하거나 형식을 구축하거나 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타타르키비츠는 기쁨delight, 감동emotion, 충격shock이란 말들을 미술과 미술품을 규정할 수 있는 순수한 현상적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정의에 대한 비판을 미리 봉쇄하려는 저의로 이런 말들이 ‘아름다운’, ‘심미적인’ 등과 같은 미의 가치를 평가하는 용어들과는 거리가 멀고 일정한 가치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을 나타내는 사실적·심리학적 용어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의는 “예술을 정의하는 데 반대하는 이들(특히 케닉)의 공격에도 면역상태”4)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나는 타타르키비츠의 정의에 다음과 같은 이의를 제기한다.
기쁨, 감동, 충격이 가치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예술 혹은 미술품만이 이런 반응을 유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예술만 의식적인 인간 행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의 행위가 의식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물을 재현하거나 형식을 구축하거나 경험을 표현하는 것 또한 예술에만 한정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 혹은 미술품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쁨, 감동, 충격으로, 달리 말해서 사실적, 심리적으로 반응하고 있으며 예술과 상관없이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과 형식을 얻어내고 있다.
자식을 낳고 기르는 데서, 화초를 심고 가꾸는 데서, 이웃에게서 선물로 받은 토실토실한 진도개를 위해 새집을 지어주는 데서 끊임없이 사물들을 재현하고 있다.
나는 예술은 정의되지 않는 가운데 이해되는 보편적 인간 행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