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그 여우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일부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안디바가 그를 죽이려 한다고 은밀히 알려주자, 예수는 자신감에 넘쳐 큰 소리로 말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 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할 그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못 볼 것이다.” 【누가복음서 13:32?5】


예수가 이 말을 한 곳은 유대를 다스리던 세 분봉왕 중 하나인 헤롯 빌립이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아부하기 위해 건축한 가이사랴 빌립보 거리 근처의 구릉지대인 것 같다.
과거에 바알갓 또는 바알헤르몬이라 불리었던 그곳 언덕에서 가이사랴 빌립보 거리가 내려다보인다.
거리 옆에 작은 폭포와 샘이 있는데 그 물은 요단강의 원천이다.
그곳으로부터 강이 굽이쳐 갈릴리 호수로 뻗으며 다시 호수로부터 유대 광야로 물이 흐른다.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강물이 바로 이 물이다.


예수는 그곳에서 마음을 다졌다.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이제 그는 제자들이 커다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힘써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없더라도 하나님을 위한 사역은 중단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훈련이 있었기에 겁쟁이 제자들은 그가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라도 용기 있는 사람들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에 대해 낙담하지도 않았다.
그가 사람들을 의심했다면 어떻게 많은 병자들을 치유했을 것이며,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나섰겠는가!
그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며, 동시에 사람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보았다.
그는 사랑이 꿈과 희망을 영원히 보장해준다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일생을 통해 증거 했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예수는 그리스도교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세상에 전파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에 관해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과 논쟁하여 새로운 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말도록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장인이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도록’ 그리스도교를 물리적, 신학적으로 창시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그리스도교를 바울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신약성서의 대부분이 바울의 전도여행에 대한 것과 바울이 교회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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