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에 관한 기록이 없어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예수는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부활을 믿었을 뿐 아니라 마르다에게 부활신앙을 가르쳐주었다.
나사로를 살린 기적은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요한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이렇게 증언했다.
예수가 동굴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막은 커다란 돌을 치우라고 했다.
돌이 옮겨지고 무덤이 열리자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기도했다.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둘러선 무리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11:41?2】


그리고 예수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죽었던 나사로가 온 몸에 천을 두른 채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목격자들에 의해 곧 사람들에게 소문거리가 되었으며, 사실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으로 몰려왔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제자들은 스승의 뒤를 따라가면서 불길한 사태가 일어날 것 같아 두려웠다(마가복음서 10:32).


열두 제자 가운데 가롯 사람 유다는 행렬에 없었다.
유다는 스승에 관해 거짓 증언을 하기 위해 한 발 앞질러 예루살렘으로 갔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스승을 배반한 동료 유다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왜 스승을 배반하기로 결심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방법은 없다.
예수가 유대 독립을 위한 지도자가 되기를 사양했기 때문에 분노하여 스승을 배반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다는 예수가 처형된 후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배반이 이미 구약성서에 예언된 것으로 미루어, 그가 스승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배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다가 예수의 결단을 존중하여 스승이 사랑의 화신으로 영생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악역을 맡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는 유일하게 스승의 사역의 의미를 알고 있었으므로 스승이 이사야와 스가랴의 예언들을 완성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하여 자신에게도 힘에 겨운 악역을 해냈는지도 모른다.
만일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통치는 예언대로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다에 관한 기록이 없어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그가 스승을 배반하기로 한 것은 하룻밤에 내린 결정은 아닐 것이다.
오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고도 스승에 대한 사랑을 저버릴 수가 없어 내린 결정일 것이다.
유다는 예수가 지상에 존재했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온전한 인간이며,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체포되면 그는 갖은 조롱을 다 받고 처참하게 살해되고 말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스승이 가르친 사랑은 화신이 되어 영원히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 또한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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