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한 상에서 밥을 먹고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자신이 존경하여 따라다닌 스승, 죄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스승을 고발하고 가야바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한 유다가 가책 없이 그날 밤을 보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악역을 맡아 무죄한 스승을 은 서른 냥에 팔아야 하는 숙명에 목을 놓아 울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그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아니다.
시편의 구절과 스가랴의 예언이 유다의 배반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예언을 이룰 거룩한 사명이 주어졌던 것이다.


내가 믿는 흉허물 없는 친구,
나와 한 상에서 밥을 먹던 친구조차도,
내게 발길질을 하려고
뒤꿈치를 들었습니다.
【시편 41:9】


예수와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흉허물 없이 지냈던 친구, 유다가 이제 스승에게 발길질을 해야 할 때였다.
유다가 스승을 고발한 대가로 받은 은 삼십 냥 역시 예언을 이루는 역사였다.
스가랴서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너희가 좋다고 생각하면 내가 받을 품삯을 내게 주고, 줄 생각이 없으면 그만두어라.”
그랬더니 그들은 내 품삯으로 은 삼십 개를 주었다. 【스가랴서 11:12】


유다가 은 삼십 냥이 탐이 나 스승을 고발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이다.
그는 스승과 함께 예언을 이룰 것을 결심하여 힘겨운 일을 맡았다.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그가 돈에 눈이 어두워서 그런 짓을 했다고 기록했지만, 그랬다면 회계를 맡고 있던 그는 벌써 돈을 횡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갈릴리 태생이 아닌 그가 야망이 없었다면 갈릴리 사람들과 어울려 여리고에서부터 갈릴리 전 지역을 방랑하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스승을 존경했고 진정으로 사랑했다.
스승의 사역이 너무나 고귀해서 자신의 몸을 바쳐서라도 그의 사역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했다.
스승의 그늘에 가리워 스승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영원히 짊어져야 하는 무거운 역할을, 숭고한 사랑 없이 선택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수에 대한 유다의 사랑은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유다야말로 예수의 동업자였으며 구원의 역사에 몸을 바친 훌륭한 제자였다.
예언을 완성하는 일은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예수가 알고 있었듯이, 또한 유다가 이를 알고 있었다.
유다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먼저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