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의 이야기를 전하며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으로부터 과거에 없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래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듣고 또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이야기라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황홀감을 맛본다.
한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고 이야기의 주인공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사람들에게는 심한 체벌이 가해졌지만, 사람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이야기가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데 전력했다.
그렇게 전래된 이야기라서 빛이 바래지 않고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생생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늘나라와 인생의 비밀을 폭로한 불경죄로 처참하게 처형되고 말았다.
그 비밀은 한마디로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사랑의 제단에 스스로 피를 뿌렸다고 말한다.
그가 스스로 저주를 받음으로써 사랑의 화신으로 부활하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목숨을 바쳤으므로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비밀과 인생의 비밀을 아는 행운을 얻었다.


오늘날 사랑이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입을 씰룩거릴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사랑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다시 질문을 한다.
“당신은 사랑을 받지 않으면서도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쉬운 일이라고 주인공은 말했다.
그러한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지켜야 할 하늘나라의 통치이며 질서라고 가르쳤다.
종교란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신학적으로 말하면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사랑은 로고스이고 진리이며,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그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난한 산골 동네에서 품팔이를 하며 홀어머니를 부양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는 고난으로 얼룩진 유대인들의 역사를 상징하며, 종교의 속박 때문에 죄인 취급당하는 인생을 상징한다.
그는 유명한 신학자들로부터 신학적 도전을 받았고, 혁명을 꾀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정치적, 사회적 도전을 받았으며, 제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했다.
종교가 사람들을 구속하던 때였으므로 신학 논쟁은 목숨을 걸 만큼 치열했다.


역사에는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러나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는 없다.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인생은 무가치하다.
그러한 역사도 무가치하다.
사람들은 꿈과 희망이란 미래에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무턱대고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좌절을 맛보았으며 그래서 꿈과 희망이란 생전에 이루어질 수 없다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주인공은 사랑으로 꿈과 희망이 당장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버림받고 소외되는 일은 없다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사랑을 알면 꿈과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긍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주인공의 생애를 통해 알았다.
그것은 기쁜 소식이었다.
과거 이천 년의 종교가 해결하지 못한 실천의 문제를 그가 몸소 행한 것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학자들의 기록에 전해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네 사람의 증언으로 전해졌다.
네 사람은 복음서를 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다.
이들은 주인공의 생애를 시기적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생애를 틀림없이 재편집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시도했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생애를 다시 재편집하는 이유는 주인공의 생애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내내 그리고 지금도 병상에 있는 사랑하는 아들 진수에게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아울러 병상에서 괴로워하는 모든 이와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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