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신약 사이 300년의 유대 역사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구약성서에서 역사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마지막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의 레위 사람 가운데서, 가문별 우두머리들의 이름과 제사장들의 이름은, 다리우스가 페르시아를 다스릴 때의 왕실 일지에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기 12:22】


여기서 다리우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를 뜻한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5년 만인 B.C. 331년 가을에 사망했다.
예수가 태어나기 약 300년 전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에는 약 300년의 공백기가 있다.
이 시기에 서양역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 변화에 대해 아는 것은 신약성서, 곧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 배경 안에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새 지배자가 되면서면서부터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Antiochus III)가 예루살렘을 공략하기까지 먼저 살펴본 후에, 유대가 다윗 왕 이래 처음으로 국권을 회복했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한다.
또한 예수가 헤롯 대왕 재임 때 태어났으므로 로마 제국이 부상하면서 유대의 왕에 즉위한 헤롯, 그가 사망한 후 세 아들이 유대를 분할하여 지배한 분봉왕 제도, 그리고 기사계급 출신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취임하기까지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한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새 지배자

B.C. 336년, 200년 전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이집트에 걸쳐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지배해온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다리우스 3세의 즉위식이 열렸다.
그리고 같은 해 그리스 북부의 작은 왕국 마케도니아에서도 젊은 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부왕 필리포스 2세는 아테네겾留?동맹군을 격파한 뒤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지중해 연안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확립했지만 암살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2년 뒤 B.C. 334년 역사적인 동방원정을 시작하였는데 그 목표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다.
이듬해 예루살렘을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B.C. 332년 시리아로부터 지중해를 따라 내려와 7개월간의 포위 끝에 두로 요새를 함락시시고 이집트까지 진군했다.
구약성서에서는 이 사건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북쪽 왕은 돌아가서, 처음보다 더 많은 군대를 일으킬 것이며, 몇 해가 지난 다음에, 큰 군대와 장비를 이끌고 갈 것이다. 【다니엘서 11:13】
하드락 가까이에 있는 하맛에도, 매우 지혜롭다고 하는 두로와 시돈에도, 그 말씀이 내린다. 【스가랴서 9:2】


알렉산드로스는 B.C. 331년 가우가멜라(Gaugamela) 격전지에서 용맹스럽기로 이름난 페르시아 군대를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가을, 페르시아의 왕궁들은 화염 속에 사라졌으며 스물다섯의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다리우스 3세의 시신을 페르시아 국장에 따라 장엄하게 장사지내도록 허락함으로써 승리자의 아량을 베풀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제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오리엔트 세계의 새 지배자가 되었고 점령 도시들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명명하였는데 이 이름이 붙은 도시는 70여 곳에 달했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연결해주는 관문에 위치한 유대의 지배자 역시 다리우스 3세에서 알렉산드로스로 바뀌었다.
신정국가 유대는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았지만 유대교는 상당히 그리스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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