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압제에 저항하여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B.C. 190년은 오리엔트에 새로운 지배자의 등장을 예고하는 해였다.
로마 군대가 마그네시아(Magnesia) 전투에서 시리아 군대를 섬멸한 사건은 역사의 무대에서 헬레니즘 3왕국(시리아, 마케도니아, 이집트)의 퇴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로마의 등장을 구약성서에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보아라, 페르시아에 또 세 왕이 일어날 것이며, 그 뒤에 넷째는 다른 누구보다 큰 재물을 모을 것이다.
그가 재물을 모으고 권세를 쥐게 되면,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서 그리스를 칠 것이다. 【다니엘서 11:2】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는 소아시아를 손에 넣었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가 메넬라우스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도 전쟁배상금이 필요해서였다.
잇따라 로마는 마케도니아와 전쟁을 시작해 B.C. 168년 여름 피드나 전투를 끝으로 마케도니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로마는 제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로마 군대에 패한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에 침입해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는 성벽을 허물고 성전에 쌓아둔 보물을 약탈하여 유대인들을 분노하게 했다.
막대한 군비가 필요했던 그는 대제사장직을 돈으로 사려는 부유한 유대인의 제안을 듣고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탐냈던 것이다.
그는 돼지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성소를 돼지피로 더럽혔으며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했다.
유대교에서 돼지고기는 금하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성전에 제우스 제단을 세우고 성전법을 폐지했으며 종교의식들을 행할 수 없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유대인들은 압제에 저항하여 투쟁을 전개했고 하스모니아(Hasmonaea) 가문의 제사장 맛다디아(Mattathias)와 그의 다섯 아들이 앞장을 섰다.
이들은 사비를 들여 군대를 조직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게릴라전을 벌였다.
셋째 아들 유다 마카베오(Judas Maccab-aeus)가 독립군 사령관이 되어 전개한 이 반란을 마카베 전쟁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의 저항은 실효를 거두어 B.C. 164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시리아를 쫓아내고 성전법과 종교의식법을 회복하게 되었다.


같은 해 안티오쿠스 4세는 원정 중 사망하였고 맛다디아의 아들들은 유대의 독립을 위해 계속해서 시리아와 전쟁을 계속했다.
B.C. 142년 다섯 형제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시몬(Siman)이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이후 유대가 독립국가가 된 것은 거의 800년 만이었다.
유대의 독립국가 시대는 이때부터 로마의 속국이 되기까지 100년도 되지 못했다.


시몬은 기드온이나 삼손처럼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친구와 적 앞에서 위대하게 설 것을” 주장하고 인간의 용감성을 칭찬한 지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지 않고 농부들로 하여금 결연히 일어나서 싸울 것을 요구했다.
시몬이 앞장서서 유대의 독립을 쟁취한 데 유대인들은 감격하였고, 민중회의는 시몬이 국가의 통치자일 뿐 아니라 “신뢰할 만한 선지자가 나타날 때까지 영원토록 대제사장”이 되라고 포고했다(이와 같은 내용은 유대교의 경전 마카비 1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로 대제사장은 하스모니아 가문에서 선출되었다.


시몬이 피살되고 그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는 아버지를 닮아 호전적이었다.
그는 이두매아(Idumaea), 사마리아(Samaria), 갈릴리(Galilee)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히르카누스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1세(Aristobulus I)와 알렉산더 안네우스(Alexander Jannaeus) 역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영토 확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유대 왕국은 북으로는 레바논까지, 남으로는 헤브론을 넘어서 그 사이와 요단 동편에 이르는 모든 지역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신정국가에 편입시켰는데, 거의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국가만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정복에만 관심이 있었던 안네우스의 끝없는 야욕은 여러 차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였으며 국력이 소모되고 국내 인사들의 존경과 호의를 잃게 되었다.
안네우스가 B.C. 76년에 사망하자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라(Salome Alexandra)가 여왕이 되었다.
그녀의 큰 아들 히르카누스 2세는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작은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2세는 군대 통수권자가 되었다.
9년 동안 집권했던 살로메는 행정력이 탁월하여 유대인들은 그때를 황금시대로 기억하고 있다.


살로메가 B.C. 67년에 사망하면서 황금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두 아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작은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2세는 형을 누르고 대제사장 겸 왕의 자리에 올랐다.
B.C. 64년 시리아 정복에 전력하던 로마의 폼페이우스(Pompeius) 장군이 내분 수습을 구실로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유대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B.C. 63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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