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새 입법자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므로 사람들에게 말할 때 “야훼께서 말씀하시기를” 또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이란 말로 시작함으로써 자신들은 단지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선포하는 것 그 이상의 일을 또 했는데 새로운 계명을 만든 것이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는 계명을 만드는 입법자인 셈이다.


예수가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는 다른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하늘나라 질서를 ‘세우려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 받았다는 자각이 그로 하여금 아버지의 하늘나라 통치를 위임받아 지상에서 직접 질서를 세우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은 예수로부터 직접 하늘나라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을 들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 【마가복음서 3:28-29】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마가복음서 8:1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마태복음서 13:17】


‘진정으로’는 헤브라이어로 ‘아멘(amen)’이다.
유대 사람들은 기도를 마칠 때 아멘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으며, 성전이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봉독될 때 아멘이라고 응답했고, 회중을 대표한 사람이 기도를 마칠 때에도 아멘이라고 응답하여 대표자의 기도에 동의한다는 것을 표시했다.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 가톨릭과 개신교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예수는 말을 시작할 때 ‘아멘’이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말이 곧 사람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되는 형식을 취했다.
예언자들 가운데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독특한 예수의 말투는 그가 단지 하나님의 ‘입’에 불과한 예언자들과 다른 새 입법자임을 나타내주었다.


예수를 새 입법자로서 이해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과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를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서 31:31-34】


예수가 직접 사람들의 가슴 속에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판에 새겨 기록한 새 율법은 지금 당장 실효를 거두는 율법이다.
그것은 광야에서 제정된 오래된 모세의 율법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사람들의 언행을 통제하고 그래서 짐스럽게 여겨지는 율법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명과 언약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서 11:28-30】


휴식은 구원이다. 예수의 새 계명과 언약을 휴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원은 상실된다.
초대교회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 주께로부터 편히 쉴 때가 올 것이며, 주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보내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3:20】


예수를 새 입법자로 이해하는 것은 더불어 그에게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옛 율법과 언약의 짐을 벗고 새로운 계명과 언약을 따라 평안을 맛봄으로써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는 종교란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사람들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며, 새 입법자로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과 휴식의 구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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