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하나님이자 인간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아버지가 아들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이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 믿으면서도 예수에게는 신성 외에도 인성(人性)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해석을 이중본성론(二重本性論)이라고 한다.
카톨릭은 삼위일체론을 교리로 삼았으며 종교개혁 후의 개신교도 이를 교리로 삼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중본성론을 믿었다.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에서 이중본성론이 종종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해석이 대중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난해한 삼위일체론에 비해 이중본성론은 사람들에게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381년 니케아 종교회의는 많은 논란끝에 신경(信經)을 공포했는데 예루살렘 교회가 세례를 베풀 때 사용하던 신경을 보완한 것이다.
니케아 신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오직 한 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오직 한 분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께서 낳으신 유일한 분이시며, 태초의 빛 중의 빛이시며, 참되신 신 중의 참되신 신이신 아버지로부터 태어나셨습니다.
예수의 다음 말은 이중본성론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심판하시는 분은 따로 계신다”고 한 말에서 그에게 신성과 인성이 같이 깃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성을 보지 말고 신성을 보라고 강조했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인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에게는 불의가 없다.” 【요한복음서 7:16-18】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서 그것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이다.
나를 배척하고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은 따로 계신다.” 【요한복음서 12:47-48】
그에게서 신성이 가려지고 인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가 체포되기 전 겟세마네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십자가에 매달려 목숨이 끊어지기 전 하늘을 향해서 외친 말이 그것이다.
죽음의 세례를 받기로 결단을 내린 예수는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가진 후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 근처 겟세마네로 가서 기도를 드렸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기도를 올렸으며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신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
(그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드렸다.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누가복음서 22:42-44】
예수는 오전 아홉 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오후 세 시에 사망하기까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숨을 거두기 전 하나님을 향한 절규는 그의 인성이 내뱉은 탄식이었다.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하셨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마태복음서 27:46】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해석을 가톨릭도 개신교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한 해석은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기독교 교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중본성론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마태의 기록을 달리 해석하여 예수가 최후에 한 말은 시편을 암송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중본성론은 때에 따라 삼위일체론과 섞이기도 하지만 두 이론의 근거는 각기 상반된 믿음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