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인자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인자(Son of Man)란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지만 모든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여인에게서 난 사람 가운데 최고를 말한다.
오직 한 분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어에선 대문자를 사용한다.
어느 날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가복음서 8:27, 누가복음서 9:18)고 물은 적이 있다.
같은 에피소드를 마태는 예수가 “인자를 누구라고 하더냐?”(마태복음서 16:13)라고 물었다고 기록했다.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 메시아라고 말하기를 꺼린 대신 인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묵시문학에서 인자는 메시아에 대한 또 다른 명칭이다.


예언자 다니엘이 인자라는 말을 사용한 바 있다.
자신이 본 환상을 묵시적으로 기록한 다니엘서는 묵시문학의 범주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묵시문학으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다니엘서의 상징적인 언어와 은유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를 던진다.
예수가 자신을 지칭한 인자에는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인자에 대한 정의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같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로 나아가
그 앞에 섰다.
옛적부터 계신 분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셔서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이
그를 경배하게 하셨다.”
【다니엘서 7:13-14】


예언자 다니엘은 인자가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 나아갔다고 묵시적으로 표현했는데 이 예언자의 의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요한은 메시아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적었는데 이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히브리서에는 예수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으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 모든 의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간 개념을 알면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들의 시간 개념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헤브라이어의 고어 아람어는 원시 언어라서 모음이 없을 뿐 아니라 동사에 과거와 미래 진행형이 따로 없다.
예를 들면 모세가 호렙에서 하나님께 사람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말해야 하느냐고 묻자 하나님은 “나는 나이다(I Am Who I Am)”라고 대답했다.
아람어로 “나는 나이다”는 “나는 나였다(I Was Who I Was)”도 되고 “나는 나일 것이다(I Will Be Who Will Be)”도 된다.
같은 시간 개념으로 예언자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를 이해한다면 메시아는 앞으로 ‘오실 분’이자, 이미 ‘오신 분’이기도 하고 현재 ‘와계신 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 엘리야의 화신으로 이해한 것 역시 부활신앙이란 측면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시간 개념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은 이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주 비논리적인 말이 되고 만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게 될 것을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서 기뻐하였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요한복음서 8:56-58】


인자를 자칭한 예수에게도 마찬가지의 시간 개념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나사렛에서 성장하고 팔레스타인을 무대로 활약한 예수가 태초에 계신 분이자 동시에 재림할 분이기도 한 것이다.
인자이기 때문에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을 수 있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마가복음서 8:38, 14:62】


예수는 고난 받는 인자에 관해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여기서 인자는 예언자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 부분만 따로 공동번역 성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이사야서 53:10】


예언자들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을 자신의 사역 목적으로 삼았던 그는 이사야의 말씀대로 고난 받는 종의 직분을 수행하지만 다니엘의 말씀대로 높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형에 처해지더라도 극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자신을 살려낼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렇지 않다면 죽은 후에라도 부활할 것을 믿었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예언했던 것이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서 9:22】


예수는 인자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리면서 자신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였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마가복음서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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