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술 500년 - 모방에서 창조로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리품이 된 미술품

 <프랑스 미술 500년>(미술문화) 중에서


나폴레옹의 동생 루시앵 보나파르트가 스페인 대사로 파견되어 1801년 아란후에즈 조약을 체결한 날 루시앵은 형 나폴레옹에게 보낸 편지에 조약을 체결한 대가로 레티로의 화랑으로부터 훌륭한 그림 20점을 받았다면서, 이것들이 자신에게는 십만 개의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하다고 적었다.
미술품 수집을 즐긴 루시앵은 자신의 고문이자 화가인 기욤 르티에르에게 스페인 화가의 작품 70점을 구입하도록 지시했다.
루시앵이 받은 20점과 구입한 70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중에는 무리요의 작품이 3점, 모로의 작품이 1점 그리고 벨라스케스의 <부채를 든 여인>302이 포함되어 있었다.
루시앵은 1801년 11월 파리로 돌아왔고 작품들은 루시앵이 새로 장만한 거처인 브리엔 호텔에 장식되었다.
루시앵은 신분이 낮은 여인과 결혼한 것 때문에 형의 노여움을 사 로마에 정착하여 평민으로 살았다.
소장품은 모두 1803년 말에 로마로 우송되어 루시앵 저택에 장식되었다가 1816년 런던에서 팔렸다.

1808년 5월 9일 나폴레옹은 나폴리의 왕으로 있던 형 조제프를 스페인의 새 국왕으로 세우고 나폴리 왕국은 자신의 처남인 뮈라에게 통치권을 주었다.
조제프의 즉위가 알려지면서 스페인은 전면적인 봉기에 휩싸였으며, 주동자들의 요청으로 영국 총리 캐닝이 원정군을 파견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5월 말 1개 사단을 거느린 뒤퐁 장군에게 장 안도쉬 쥐노가 이끄는 포르투갈군의 지원을 받아 안달루시아를 거쳐 카디스를 장악하라고 명령했다.

1808년 6월 10일 조제프가 새 국왕으로 마드리드에 입성했지만 이튿날 뒤퐁 장군은 바일렌에서 스페인군을 맞아 치욕적인 항복을 했으며 나폴레옹 대군이 무적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조제프는 나폴리를 버리고 스페인으로 온 것을 후회했다.
몇 주 만에 스페인은 불에 타고 피로 물들었다.
마드리드에서의 소요는 1808년 말까지 지속되었다.
나폴레옹은 12월 4일 몸소 마드리드로 가서 형 조제프를 왕위에 앉혔다.
3주 후 나폴레옹 뮤지엄의 디렉터, 도미니크-비방 드농이 마드리드로 와서 파리의 뮤지엄으로 가지고 갈 회화작품 20점을 선정했다.
그는 과거의 궁정 소장품, 고야의 <옷을 걸친 마하>266와 <벌거벗은 마하>196가 포함된 고도이의 소장품, 귀족의 소장품들 가운데서 선정했다.
나폴레옹은 조제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드농이 회화작품을 가져갈 것이라면서 형이 포획한 작품들이 많은 줄 알며 그것들 중 파리의 뮤지엄에는 없는 걸작들로 50점을 자신에게 선물로 보내주면 이에 상당하는 것들을 나중에 보상하겠다고 적었다.
조제프가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회화작품들은 1812년에야 파리로 운반되었다.
조제프는 50점 외에 250점을 더 보냈는데, 이것들을 본 드농은 매우 실망하면서 나폴레옹 뮤지엄에 전시할 만한 것은 여섯 점에 불과하다며 조제프가 형편없는 것들만 보냈다고 투덜거렸다.
나폴레옹 뮤지엄에 전시할 만한 것들에는 수르바란의 <소틸로에서의 크리스천과 무어인의 전투>303와 무리요의 <로마 제국 지방 집정관의 꿈>304이 포함되었다.

나폴레옹에게 300점의 회화작품을 보낸 지 몇 주 후 조제프는 아주 많은 짐을 꾸리고 1813년 6월 마드리드를 떠나 파리로 향했다.
그의 짐 속에는 165점의 회화작품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는 무리요와 리베라의 훌륭한 작품들과 벨라스케스의 <세비야의 물장수>164도 있었다.
이 작품들은 조제프가 그의 아내와 살던 마드리드의 레알 궁전을 장식했던 것들로 나폴레옹에게도 주지 않고 그가 아꼈던 것들이다.
조제프의 행렬은 장군 위고(빅토르 위고의 아버지)의 인솔로 파리로 향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영국의 명장 아서 웰레슬리 웰링턴 장군의 군대를 만나 회화작품들을 포획 당했다.
페르디난도 7세는 자신의 왕위를 복위시켜준 웰링턴에게 그것들을 선물로 주었고, 이 작품들은 현재까지 웰링턴의 저택에 소장되어 있다.

회화작품에 대한 조제프의 집착은 아주 컸으며 걸작을 수집하려고 노력하는 나폴레옹과 드농의 눈을 속이고 은밀히 보관하다가 파리로 운반한 것들이 몇 점 있다.
그가 특별히 아끼던 것들로 이것들에는 당시에는 딴 화가의 작품으로 인식되었으나 훗날 라파엘로의 작품으로 확인된 3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들 중 일부는 스페인에 남겨두었지만 일부는 그가 미국의 필라델피아로 망명할 때 가지고 갔으며 이 작품들을 전시에 종종 빌려주었다.
1841년 그는 미국을 떠나 피렌체로 가서 1844년 그곳에서 죽었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갖고 있던 작품들 중에는 무리요와 벨라스케스의 걸작들이 있었고, 다비드가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묘사한 <생베르나르 고갯길을 지나는 보나파르트>305와, 이것을 작은 크기로 모사한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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