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편 당신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이다
You Will Arise and Have Compassion on Zion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

4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5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8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 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9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10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일어나소서, 시온을 어여삐 여기소서, 때가 왔사옵니다.
시온을 불쌍히 여기실 때가 왔사옵니다.)

14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
(당신의 종들은 그 폐허의 돌들마저 아끼고
먼지조차 눈물을 자아냅니다.)

15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16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9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22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23 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24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룰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28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표제에는 독특하게도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A prayer of an afflicted man. When he is faint and pours out his lament before the Lord)’라고 했다.
고통당하는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묵상하는 데 이 노래가 사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제22, 69, 79편의 내용 일부가 이 노래에 포함되었으며 부분적으로 이사야 40-66장의 내용과 유사하다.


저자는 원수의 비난으로 인하여 위축되었으며 곤경에 처했음을 슬퍼하면서 하나님께서 속히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기를 고대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며 버리지 않으신다는 진리가 많은 성도로 하여금 그분을 찬양하게 한 사실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난을 자신의 수난으로 여기고 참담함을 서정적으로 토로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것을 믿고 있다.


6절의 vulture를 당아새(pelican, 사다새)라고 번역했는데 중세 교회는 당아새를 그리스도의 상징물로 사용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아새를 불결한 새로 믿었기 때문에 멀리했다.
저자는 바빌론에 붙들려가서 포로 생활하는 백성을 자신에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셨다가 던지셨기 때문에(10절)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11절)라고 탄식했는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노래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12절)라는 표현은 포로 때 예레미야가 지은 노래에서도 발견된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예레미야 애가 5:19)


자신의 곤경을 조롱하는 원수의 말을 듣자 저자의 난감함은 더욱 가중되었다.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9절)는 비탄을 나타내는 말로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쓴 것을 뜻한다.
이사야도 재를 먹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이사야 44:20).
저자는 비탄과 슬픔을 일용할 양식처럼 먹었다.
하나님의 분노가 자기를 소멸시켰다고 생각하자 그의 비탄은 고조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다고 생각하자 그는 하루가 거의 끝났음을 나타내는 저녁 그림자 같고 시들어가는 풀처럼 자신의 생명이 거의 다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불평 끝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그에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12절)라고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지금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때라고 믿었다.
수난의 역사적 상황에서 이사야는 말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4-15)


14절은 13절과 연관성이 없고 새로 노래를 시작하는 구절이다.
저자는 시온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가졌다.
그는 시온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심지어 시온에 있는 돌들과 티끌도 사랑한다고 했으며 하나님이 시온을 건설하실 것을 아는 열방과 열왕도 그분을 경외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에서 저자가 연약함으로부터 성읍의 회복을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생각을 확대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시온에서 발생한 재난을 계기로 이 노래를 지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18절)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통해 포로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이 시온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했다(에스라 1:1-4).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24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하신 말씀처럼 들린다.


하나님의 연대는 무궁하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생명이 잠시라도 더 연장되기를 원했으며 장수하여 평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하였다.
피조물에 대조하여 하나님의 영원성을 말하려는 것은 그분께 대한 시편 저자들의 강한 확신의 발로이다.
천지는 없어지며 낡은 옷같이 낡아질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불변하며 영원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세대에 대하여 신실하실 것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노래의 25-27절을 예수에게 적용하였다.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히브리서 1:1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