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인정받는 것이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인정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주요 관심사이다.
구약성경은 율법이 사람을 선하게 만들고 의인이 되게 한다고 가르치는데 의란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율법은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할 뿐 결코 죄를 제거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스스로 죄를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로 말미암아 불의한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것이 은총 (또는 은혜)인데 바울은 믿음을 통해서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3)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 그 자체만을 가치 있게 인정하는 것이 아니며 믿음은 단지 인정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은혜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16)


바울은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고 했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의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며 의를 인정받는 것은 곧 속죄의 결과라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 근거해서 바울은 예수의 죽음을 화목제라고 했다.
그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라고 했다.


그는 하늘나라보다는 교회에 관해 더욱 많은 말을 했는데 당시의 상황이 다양한 종류의 교인들을 체계적으로 목회하는 일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나라를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으며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의 지역적 공동체라고 했다(고린도전서 1:2, 12:28, 15:9).
고린도 교회가 특히 교파 간의 분쟁으로 조직에 유동성을 보였는데 바울은 은사(Charismata)에 관해 말함으로써 그 분쟁을 막으려고 했다.
이후에 쓴 편지에서 교회의 조직이 나아졌음은 집사, 장로, 감독 등 공식적인 직분들이 나타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세 편의 목회서신에서는 고도로 발전된 조직이 잘 묘사되어 있다.


초대교회에는 세례와 관련된 어떤 일정한 전승과 가르침이 있었다.
마태복음(28:19-20)에서는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가 베풀어졌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바울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고린도후서 13:13)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16)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로마서 15:30)


그리스도 신학을 대부분 창조한 사람은 바울이다.
그의 신학은 이천 년 동안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도교를 바울의 종교라 하고 신학을 바울의 각주라고 하는 것에서 그의 신학이 절대적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교회 밖에는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다소의 유대인”이라고 한 것을 두고 니체(Nietzsche)는 바울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영원한 유대인”이라고 비꼬며 다음과 같은 말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수가 전한 기쁜 소식에 아주 상반되는 점을 바울이 구체화했다.
증오의 영상 안에서, 연민도 없는 증오의 논리 안에서 바울은 증오의 천재였다.
사악한 복음주의자들이 그의 증오에 헌신하지 않았느냐!
그가 먼저 헌신했고 다음으로 구주가, 구주를 그의 십자가에 못 박았다.…
신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었다.
믿음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
죽은 후에 부활했다.
이 모든 것은 병적인 괴짜 바울이 조작한 참 그리스도교의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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