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Paul)은 로마식 이름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Paul)은 로마식 이름이고 본명은 사울(Saul)이다.
그가 태어난 다소(Tarsus)는 학문의 도시고 “소아시아의 아테네”로 불리었으며 상업도시로도 유명했다.
베냐민(Benjamin) 지파에 속한 유대인으로 태어난 바울은 율법에 따라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빌립보서 3:5).
전설에 의하면 바울의 조상은 갈릴리(Galilee) 북쪽 게네사렛(Genasseret) 호수 근처에 거주한 지독한 보수주의자였으며 가족이 다소로 이주한 것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였다.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을 취득했으므로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었다(사도행전 22:28).
또한 고조부가 바리새인이었으므로 바울은 바리새파 교육을 받았다.
바울의 아버지는 딸의 혼례를 예루살렘에서 올렸고 바울을 랍비가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사도행전 22:3).
바리새파의 촉망받는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그리스도인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호송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 온 빛을 보고 갑자기 눈이 멀었으며 부활한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
빛을 보고 어떻게 눈이 멀었으며 예수의 음성을 어떻게 들었는가에 관해서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신비적인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비주의를 옹호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다.
모세의 율법이 더 이상 유용하지 못함을 역설했으며 율법을 저주라고 했는데 613가지나 되는 법적 간섭이 사람을 의인으로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죄인으로 규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율법의 면책을 주장하지 않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만용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른 행위에 따라서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지만 궁극적으로는 믿음이 구원을 보장한다고 보았다.
바울은 또한 신약성경을 가장 먼저 쓴 사람이다.
그는 50년대 초부터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 신학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51년에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후 64년까지 로마, 고린도, 골로새, 에베소, 갈라디아, 빌립보, 빌레몬 교회의 교인들과 믿음의 아들들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들 13편이 신약성경에 포함되었다.
그가 즐겨 사용한 말은 의와 믿음이었으며 그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의라고 믿는 것이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21-22)
여기서 의란 예수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혜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4)
아담의 원죄로 인해 인류는 죄와 사망을 상속받았는데 제2의 아담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사망의 위협으로부터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바울은 주장했다.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로마서 5:15)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의를 아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의로워지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후견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3-24)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16)
후사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며(로마서 8:14)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영광이다.
영혼의 영광에 관해 언급한 것은 멸할 수밖에 없는 육체가 불멸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한 때문이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15:50)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누리는 영광은 당장 체험이 가능하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