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자(Gnosticist)란 신적 지식(그노시스 gnosis)을 아는 사람을 말하는데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지중해 동쪽 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들 중에는 바울의 신학에 반발한 교회도 있었지만 대부분 절대적 권위로 받아들였다.
물리적으로 바울을 괴롭힌 사람은 유대인이었지만 신학적으로 괴롭힌 사람은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성령은 지혜와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므로 성령은 신적 지혜 또는 지식을 주는 힘으로 인식되었다.
오순절에 500명이 한꺼번에 성령을 받은 것은 전설처럼 알려졌고 바울 또한 성령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성령이 신적 지식을 준다는 믿음에 관해서는 영지주의자들의 견해도 바울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신적 지식을 다른 데서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신적 지식을 구할 수 있다고 한 반면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포함해서 이교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도 구할 수 있으며 유대교의 종말론과 근동 일대의 종교 문화에서도 가능하다고 했다.


영지주의자(Gnosticist)란 신적 지식(그노시스 gnosis)을 아는 사람을 말하는데 1세기와 4세기 사이 지중해 동부 절반에 해당하는 일대에 영지주의자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들은 영혼이 불멸하다고 믿은 반면 물질은 멸하며, 본질적으로 악하고, 순수하고 고상한 영혼을 육체가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영혼이 어떻게 육체에 유입되었으며, 영혼이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윤리적인 문제로 인식했고, 육체의 욕망을 부정하는 데서 영혼의 자유를 구가하려고 했다.


파피루스에 기록된 영지주의자들의 교본이 이집트 농부에 의해서 1945년 낙 함마디(Nag Hammadi) 마을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교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부활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차라리 세상이 환상이라고 말하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세상을 환상으로 여겼으므로 환상에서 벗어나는 데서 자유를 누리려고 했다.
세상을 하나님의 최선의 창조물로 믿은 바울은 세상을 경시하는 그들을 비난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을 사악하게 여겼으므로 그리스도가 육체를 지닌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들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자 요한은 교인들을 단속했으며(요한 1, 2, 3서) 바울은 그들의 교설에 귀를 기울이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누가 철학과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로새서 2:8-9)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처형당하기 위해 로마로 압송될 때 영지주의자들의 교설에 주의를 요하는 편지를 교인들에게 보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족속이요,
마리아의 아들이며,
실제로 태어나서 먹고 마시다가
본디오 빌라도의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에서
이탈된 말을 할 때 못들은 체 하기 바랍니다.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서 영지주의자들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부정했음을 볼 수 있다.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예수이지 그리스도가 사망한 것은 아니며 그것은 신적 존재자가 사망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영지주의를 배척하기 위해서 이그나티우스는 감독의 고유한 직권이 신적임을 내세웠다.
그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문제는 교회를 정의하는 문제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감독과 교회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인의 인격적 결합에 비유하면서 감독이 교회의 구심점임을 강조했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감독이 출현하는 곳에 사람들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감독은 이단을 막아내는 최선의 무기이며 보루라고 그는 말했다.


분열을 경계하십시오.
분열은 모든 악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은 감독 따르기를 그리스도가 아버지를 따른 듯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독에게 복종하기를 사도들에게 복종하듯이 하며 집사들을 (오늘날 장로들을 말함) 존경하십시오.


이그나티우스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부여한 성스러운 직책을 감독이 물려받은 점을 내세워 감독을 대할 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하듯 하라고 했다.
감독의 권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권위로까지 상향 조절한 것이다.
또한 최후의 만찬(the Lord’s Supper)을 기념하는 성찬식(communion)을 “불멸의 약이요, 죽음을 해독시키는 약”이라면서 감독이 베푸는 성찬식의 의의를 강조했는데 이는 감독의 권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교회를 지역의 공동체로 한정해서 이해하지 않고 세계에 두루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편적인 단체로 인식하였다.
그가 처음으로 사용한 가톨릭(catholic)이란 말도 보편적(universal)이라는 뜻이다.


이레네우스(Irenaeus, 130-200) 또한 이그나티우스와 마찬가지로 감독의 직권이 사도들의 직권의 연장임을 강조했다.
178년경 프랑스 남부 리옹의 감독으로 선출된 이레네우스는 『모든 이단에 반박하여 Adversus omnes Haereses』라는 제목으로 영지주의를 배척하는 글을 썼다.
그는 170년경에 『사도직의 계승 Apostolic Succession』을 썼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그리스도가 사도를 선택했고 사도는 감독을, 감독은 후계자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감독들이 선택되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에게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밀스러운 지혜가 있다면 그리스도의 지혜는 사도들을 통해서 마땅히 감독들에게 전수되었을 테고 또 후계자들에게도 전수되었을 텐데 감독들이 영지주의자들일리 만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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