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을 이해하는 것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데 이 개념에서 세계와 인간, 죄와 고통의 본래적 개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구속의 필요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조로아스타 종교의 영향 아래 형성된 시리아 사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페르시아인의 이원론은 신화적이며 상반되는 원리 즉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빛과 어둠의 신화적 이원론이 영지주의자들에 의해서 정신과 물질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으로 발전되었는데 사악한 물질세계는 선한 하나님에 의해서 지배되는 정신세계와는 태초부터 대립된다.
그리고 이런 충돌에서 정신적 원리 중 일부가 물질세계에 갇혔기 때문에 세계와 인간이 시작되었으며 죄와 고통도 생겨났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의 주된 문제는 영혼이 어떻게 사악한 물질세계로부터 해방되어 선한 정신세계에 참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에게 아직 정신세계의 원리가 다소 남아 있기 때문에 해탈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해탈은 구속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예수를 그 구속자로 보았다.
예수의 가르침은 물질세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어 모든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사람으로 하여금 신비적 마법의 교의에 정통하게 하며, 세속의 영역을 초월해서 하나님에게 도달해 빛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으며 따라서 최후의 심판도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 구원이란 해탈해서 영혼이 본래 있던 곳 즉 빛의 나라로 올라가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모든 신비적 의식을 다시 행하여, 결국 충만한 신적 존재 속으로 흡수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개인의 인격적 불멸에 대한 소망은 없었다.


니브(J.L. Neve)와 헤이크(O.W. Heick)는 공저 『그리스도교 교리사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I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1946)에서 초대교회에 미친 영지주의의 영향을 열거했다.


1. 영지주의가 스스로 보편적인 종교임을 자처한 것은 교회로 하여금 보편성(Catholicity)을 주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2. 영지주의는 구약성경과 사도들의 저작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약성경의 영감과 신약성경의 내용을 영구적으로 확정하는 일이 교회의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3. 그리스도교를 근본적으로 하나의 교리적 체계로 볼 수 있다고 하는 영지주의의 논란에 대해 교회는 이 같은 교리가 실제로 어떠한 것인가를 진술함으로써 답변했다.

4. 교회의 교리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표준 regula fidei’이 요구되었다.
지역에 따라서 상당히 다양한 것이긴 하지만 이런 ‘신앙의 표준’으로부터 고대의 그리스도교적 신조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5. 영지주의가 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자 교회는 유능한 수호자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감독이 선두에 나서서 이단 전체를 대항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감독의 우위성이 확보되었으며 감독직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이 주어졌다.

6.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영지주의는 신비주의를 어느 정도 교회에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7. 마지막으로 영지주의자들의 금욕주의 사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교회의 수도원 제도를 위해 길을 예비해주었다.


니브와 달리 하르낙은 저서 『교의사』에서 영지주의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영지주의자들은 실로 첫 세기의 신학자들이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문화의 신속한 상호융합을 꾀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고 했다.
영지주의에 대한 니브와 하르낙의 견해 차이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스 문화가 두드러진 시대에 지지받는 종교로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스도교는 그리스 문화와 신속한 융합을 꾀하지 않을 수 없었을 줄 안다.
그리고 이런 일에 앞장을 선 사람들이 영지주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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