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시온은 그리스도가 구주의 역할을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마르시온은 그리스도가 구주의 역할을 하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출현한 것이며 처형될 때 그리스도는 예수와 더불어서 사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불멸하는 그리스도가 사망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므로 그리스도가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그리스도의 형체가 예수의 모습으로 보여졌을 뿐 그리스도가 인간의 육체로 변질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그리스도가 사악한 물질인 육체로 변질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그리스도가 수난당한 후 사망하는 것은 창조주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므로 창조주에게 회귀하기 전 그리스도는 사망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신학은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마르시온은 요한복음서를 정경에서 제외시켰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망과 부활을 부정했으므로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단(heresy)이란 말은 50년대부터 사용된 말인데 바울의 신학을 유대인이 이단이라고 했다.
85년경 유대교 회당 예배 때 유대인은 나사렛 사람들과 이단자들을 처치해야 한다고 했으며 그 후 이단은 상대방 신학을 배척하고 비난하는 말로 종종 사용되었다.
마르시온은 그리스도와 성령이 그노시스를 제공한다고 했는데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을 곡해한 것 같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13-17)
하르낙은 초대교회시대에 바울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으로 마르시온을 꼽을 수 있지만 바울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마르시온은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지만 구약이 신약을 위한 준비의 말씀이었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율법이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는 가르침도 깨닫지 못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구원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4:4-5)
교부들이 마르시온을 영지주의자라고 비난했지만 그에게서는 반영지주의 요소도 발견된다.
영지주의자들은 죄악과 죽음의 권세로부터 영혼을 구해 주는 그노시스는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 현인들에게만 가능하다는 지성주의를 표방했는데 마르시온은 지성주의의 만능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구원론은 지성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노시스를 구하려 하기보다는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순수한 사랑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지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했다.
하나님의 순수한 사랑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믿음을 바울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마르시온은 사도들 가운데 바울이 유일하게 율법과 복음 사이에 화해가 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했다고 했는데 이는 바울의 가르침을 곡해한 것이다.
바울에 대한 그의 신뢰는 대단했는데 열두 사도를 바울의 가르침에 상반되는 사람들로 규정했으며 열두 사도는 유대교로부터 계속 영향을 받아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거짓되고 허황된 전승을 후세에 남겼다고 비판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도들이 여전히 율법주의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사도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회복시킨 유일한 사람으로 바울을 꼽으며 바울이 유일하게 예수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했으며 그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누가도 복음서의 권위를 구약성경을 인용해 나타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구약성경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 역사에 관심이 없었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관련시키려는 어떤 신학도 용인하지 않았다.
그는 바울의 목회서신과 히브리서를(당시 바울이 저자라고 믿었다) 제외한 10편의 서신과 일부 삭제된 누가의 복음서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예수가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구절과 예수와 관련된 구약성경의 인용구절들을 삭제했다.
정경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부족할 때였으므로 마르시온이 선택한 정경은 교회사에 신약성경의 첫 정경이란 의미를 남긴다.
당시 교부들은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을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는데 마르시온이 그 신학적 내용을 정경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404년 라틴어로 출판된 가톨릭의 공식정경 불가타(Vulgate)에는 바울 서신에 관한 마르시온의 견해가 적혀 있어 그의 영향이 컸음을 알게 한다.
결론으로 말하면 마르시온은 영지주의자로 정죄 받았지만 영지주의자가 아니다.
구원이 그노시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만 보아도 영지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영지주의자들의 지성주의와 원죄에 관한 이론도 용인하지 않았으며 그들과 달리 교회 안에 사변적인 교리를 가진 신비주의 단체를 형성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선의 하나님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스도는 단지 명칭에 있어서만 하나님과 구별이 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이 율법에 패한 그리스도를 보복하기 위해 그를 유대인의 손에 맡겨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했다는 논리를 폈으며 또한 선의 하나님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바울의 서신은 진리의 첩경으로 바울의 가르침이 믿음과 사랑에 불을 지피고 교인으로 하여금 금욕주의를 통해 경건한 삶에 이르게 한다고 보았다.
그는 교회와 마찰했지만 교회는 이 분쟁을 통해 배운 바가 있었다.
창조주와 구속자는 동일한 분이라는 점과 하나님은 공의와 자비가 융합된 분이라는 점이다.
교회로부터 축출된 마르시온은 가톨릭 교회와 대립되는 교회를 세움으로써 율법주의에 집착한 교회를 부정하고 교회가 복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점을 시위했다.
마르시온은 160년에 사망했지만 추종자들은 로마 전역에 확산되었다.
추종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300년경 마니교(Manicheanism)로 개종했는데 마니교는 페르시아의 예언자 마니(Mani, 210-75)를 교주로 한 신흥종교였다.
마니교는 3, 4세기에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아우구스티누스도 개종하기 전 약 8년 동안 마니교에 심취했다.
선과 악의 신이 공존하는 마니교는 금욕주의 생활로 최후에 승리할 선의 신의 편에 서라고 했는데 이는 영지주의자들의 신학과 일치했다.
그러나 마르시온이 구약성경의 창조주를 악의 신이라고 비난했더라도 제2의 신을 허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마니교의 이원론적 신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