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학파
Nothern African school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오늘날 알제리 지역인 북서부 아프리카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심지로 부상했었다.
이 지역은 고대 말기에 지중해의 주요 도시였으며 이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한때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가 알려진 당시 이 지역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북아프리카 학파의 중요한 신학자들로는 테르툴리아누스(225년 사망)와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258년 사망), 힙포의 아우구스티누스(430년 사망)가 있다.
이 학파는 현실주의를 표방했으며, 실천적인 문제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고, 이상주의를 추구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심한 대조를 이루었다.
북아프리카 학파는 고전주의 학문과 철학을 신학에 오류를 범하게 하는 요소로 여기고 배격했으며, 사도적 전승의 순수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성결한 생활과 엄격한 금욕주의를 통해 영혼을 맑게 하는 데 전념했다.


초기 가톨릭시대의 특징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27권의 신약성경이 확정되었으며, 영지주의자 마르시온이 축출되었고, 묵시주의를 표방한 몬타누스가 배척되었으며, 감독제도가 발전해 감독직에 오르는 것이 의식으로 행해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교회는 계속해서 제국의 박해를 받았고 영지주의의 종교철학과 마르시온주의, 몬타누스의 위협적 요소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르낙은 『교의사』에서 영지주의에 대한 감독들의 비판을 요약했다.


1. 구약시대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인 동시에 구속의 하나님이다.

2.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개념 자체까지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3. 하나님의 유일성은 보잘것없는 관념의 희롱에 불과한 영지주의자들의 유출설로 인해 위태로워졌다.

4. 신적 존재의 모든 상태에 대해 토론함은 무익하다.

5. 영지주의자들은 죄의 기원을 빛의 나라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6. 우주의 구성을 비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지혜와 선함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외람된 일이다.

7. 그리스도에 대한 가현설은 하나님을 거짓으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8. 사람의 자유의지는 부정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신앙의 표준 regula veritatis, rules of faith’이 발전된 것이다.
신앙의 표준은 교회의 모든 가르침의 근본원리를 신조형식으로 요약한 것인데 관련 성경구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디모데전서 6:12)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디모데전서 6:20)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1:1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22)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로새서 1:5)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로마서 6:17)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 (히브리서 6:2)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로마서 2:16)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린도전서 15:1)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디모데후서 1:13)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디모데전서 4:6)


이상의 구절들은 고백, 위임된 일들, 신앙, 진리의 말씀, 교리의 형식, 복음, 온전한 교훈, 신앙의 말씀 등에 관한 것으로 대부분 바울의 신학인 것이 특징이다.
이것들은 복음과 신앙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교훈 전체를 대신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다음과 같이 바울의 말은 세례의식문처럼 들린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3-4)


신학자 파이네(P. Feine)는 신약성경에 있는 신앙의 표준을 1925년에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었다.


나는 세계의 창조주요 아버지인 한 분 하나님 (또는 세계를 자기에게 속하게 하는 분, 또는 세계를 자기로 말미암아 자기를 통해 자기를 위해서 있게 한 분, 또는 하늘과 땅을 지은 분, 또는 세상의 한 분 하나님이요 한 분 아버지인 분, 또는 만물 위에 존재하고 만물 안에 존재하는 분)을 믿노라.
또 다윗의 후손으로 난 하나님의 아들 (또는 독생자) 주 (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노라.
그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 죄를 위해 죽었으며 장사한바 되어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또는 죽은 자들에게 내려 가고) 사흘 만에 부활했으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이니라.
그는 모든 천사와 권세들을 복종케 하는 분이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분 (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올 분, 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도록 하나님에게로부터 임명을 받은 분)이니라.
그분을 통해 우리는 죄의 용서와 성령의 은사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 (또는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 또는 영생에 대한 소망)을 받느니라.


파이네가 재생한 삼위일체를 근거로 한 이 신조는 사도신경(Apostles’ Creed)을 낳게 한 모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세례의식에 사용된 신앙의 표준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동정녀에게서 나셨고,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으며,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심판을 행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분”으로 인식되었다.


니브는 이렇게 인식된 이유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이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본질적인 작업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세례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행해진 것은 사도가 아니라 교부들에 의해서였으므로 니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가 행해진 것을 130년과 140년 사이로 어림했다.


‘고대 로마 신조 Old Roman Creed’가 만들어진 연대는 100년과 3세기 초 사이로 보는데 신학자들마다 같지 않다.
그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과 흡사하며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노라.
또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니,
그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었으며,
사흘 만에 죽은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셨고,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또 성신을 믿으며,
죄의 용서를 믿으며,
몸(육)의 부활을 믿노라.


신조(또는 신경)로 번역되는 creed는 ‘나는 믿는다’라는 뜻의 라틴어 credo에서 유래했다.
로마인이 이 신조를 세례의 신앙고백으로 사용한 것은 니케아 신조(Nicea Creed)를 사용하기 전까지였다.
3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로마 교회는 세례와 예배에서 사도신조를 다시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서부 고올(Western Gaul)에서 발전되었는데 이런 발전된 형식의 신조는 로마 밖의 모든 교회들이 본래의 신조에다 어떤 특정한 의미의 구절을 첨가한 것이다.
변전된 형식의 신조는 로마 교회에서 용납되었는데 그 정당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첨가된 구절들은 대부분 초대교회의 여러 지방에서 사용된 것들이다.
서방 교회 전체가 이 신조를 용납했으며 루터의 교리문답과 하이델베르그의 교리문답에도 이 신조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신조는 신학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함유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서로 구별되면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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