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툴리아누스의 아버지는 카르타고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아프리카의 로마 통치지역 카르타고(Carthago)의 부유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였다.
카르타고는 오늘날 투니시아(Tunisia)인데 당시 문화적으로 교육적으로 서방에서 로마에 버금가는 도시였다.
그의 아버지는 카르타고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카르타고에서 문법, 수사학, 문학, 철학, 그리고 법을 공부한 후 로마로 가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그리스도교에 관심이 생겨 195-6년에 개종하였으며 나중에 장로가 되었다.
그는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었다.
그가 저술활동을 한 것은 195년부터 220까지였다.
저술가로서 테르툴리아누스는 독특했는데 과거의 저술가들과는 달리 논리전개에 있어서 엄격한 형식을 사용하고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을 시위했으며 수사학에서 빼어난 역량을 나타냈다.
원죄(original sin), 자유의지(free will), 공의(righteousness)에 대한 의무, 보상 등을 법률적인 관념으로 정의했는데 이것은 논리적이고, 역설적이었으며, 생동감과 해학이 넘쳤다.
막연했던 신학적 관념들이 그에 의해서 명확해졌으며 그가 정립한 개념들은 이후 천 년 동안 서방 신학에서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그리스어로 저술했지만 나중에 라틴어로 저술했으므로 그는 라틴 신학의 아버지로도 칭송받았다.
변증가들과 마찬가지로 테르툴리아누스도 이단에 대항했으며 이레네우스와 마찬가지로 영지주의를 주된 대적으로 삼았다.
그는 철학을 영지주의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저술에서 철학을 거부하는 사상이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철학자와 이단 사상가들은 동일한 주제를 논의하면서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가엾은 아리스토텔레스여! 그들에게 변증법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논조를 만들고 파괴하는 일에 참피온이 되도록 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구려.
그들의 이론은 교활하며, 추론하는 일에 진땀을 흘리고, 증거를 발견하여 확신으로 삼으며, 논쟁에서 주제넘게 행동했지만 결국은 논쟁을 통해 얻은 것이 없음을 볼 때 그들의 노력은 무상해지고 말았다오.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아카데미가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단자들이 그리스도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의 교리는 솔로몬 성전의 기둥으로부터 비롯했고, 순결한 마음으로 주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사람이 원한다면 스토아주의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 그리고 변증법적 그리스도교가 가능하지만 우리에게 이미 복음이 전파된 이상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알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을 초월하는 어떤 소망도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이 우리 믿음의 첫째 원칙이기에 믿음을 초월하는 그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는 믿을 만하지 않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믿음을 초월해서 어떤 것을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로 인해서 참신앙의 빈곤함을 드러낼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찾고 있는 바로 그것에 대해서만 믿음을 가진 자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영지주의자들도 그들의 지혜 가운데서 믿음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보고 성경에 이미 계시되어 있는 사도적 전통이 보존된 단순한 신앙을 가질 것을 권했다.
그는 저서 『마르시온에 대적해서 Adversus Marcionem』에서 이원론주의에 근거한 그리스도론을 비판하면서 예수는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고대한 메시야의 구현이라고 했다.
그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배척하고 신약시대의 하나님만을 찬양한 마르시온의 신학에 반박하면서 마르시온의 하나님이 그토록 선하고 능력이 있는 분이라면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의 모든 시간에 기껏해야 한 그루 외로운 나무만을 창조했다”라는 말로 빈정거렸다.
마르시온의 신학을 비판한 글에서 삼위일체가 시사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는 성부와 성자, 성령은 세 분이지만 신성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한 분(una substantia)으로 간주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성부는 완전한 신성이며 성자는 신성으로부터 비롯한 완전한 신성의 일부분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가 신성을 지닌 점에서는 하나님과 일체이므로 완전한 신성의 부분이 된다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과 동등한 수준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그리스도가 예수의 형체로 나타날 때 그리스도가 지닌 신성이 육체와 완전히 융합되지 않았으므로 신성을 지닌 예수는 동시에 인성을 지닌 분이기도 하다고 했다.
예수의 인성에 대한 강조는 신성만을 주장한 동방 교회 감독들과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
동방 교회 감독들이 예수의 생애를 그리스도가 사람이 된 사건으로 이해한 데 비해 서방 교회 감독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건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구원의 역사로 해석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는 “예수는 새 율법과 새 계약을 주었다”라고 하면서 입교자는 참회하는 세례를 받아 “물의 성례로 모든 죄를 씻은 후 영생”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고 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바울이 죄의식에 근거한 신학을 전개한 이래 죄의식을 가장 강조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