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툴리아누스는 로마서를 읽고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로마서를 읽고 바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교회를 사도들의 가르침이 보관된 곳으로 정의하면서 역대 감독들을 가리켜 믿을 만한 전승의 관리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그가 50대 초에 스스로 종파 분립주의자가 되어 묵시주의자 몬타누스의 신학을 옹호하는 데 가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몬타누스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체험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말에 나타난다.


사람이 성령을 받았을 때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나 말씀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힘에 사로잡혀서 이성을 잃게 되고, 성령이 가득한(pneumatici) 우리와 동물적(psychici) 사람들 사이에 주지해야 할 사항들을 지적해 준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과 동물적인 사람을 양분하는 방법은 영지주의자들의 방법과 일치하지만 영지주의자들이 지성적인 면에서 구별한 데 비해 테르툴리아누스는 윤리적인 면에서 구별했다.
이러한 지성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의 차이는 영지주의와 몬타누스주의의 차이이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그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는 로마 교회 장로들을 동물적인 사람들로 묘사하고 자신을 포함한 성령이 가득한 사람들을 그들과 구별해서 감독들로부터 비난받았다.
그는 엄격한 윤리를 주장했는데 재혼을 비윤리적인 행위로 간주했으며, 세례 받은 사람의 간음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규정했고, 이런 죄를 범한 죄인은 교회로부터 영원히 추방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교회를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신탁한 곳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파문당하는 것은 구원받을 수 없는 저주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간음을 용서받지 못할 죄로 규정한 것은 요한의 말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요한 1서 5:16-17)


테르툴리아누스는 저서 『우상숭배에 관하여 On Idolatry』에서 유일신인 하나님을 숭배할 것을 역설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순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고 하며 황제숭배를 죽음을 무릅쓰고 거부해야 함을 시사했다.
또한 국가가 의식을 통해 황제를 신격화하므로 그리스도인은 황제를 신격화하는 그 의식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평화에 헌신해야 하므로 군인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배심원이 되어 법정에 서서도 안 되며,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거나 사형에 처하는 일에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사항들이 예수가 유대의 왕이 되기를 거부한 것과 같은 것이라 했다.


이런 사실은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라는 점을 여러분으로 하여금 상기하도록 해준다.
한 영혼이 하나님과 황제 가이사를 두 주인으로 함께 섬길 수 없으며, 가이사의 형상은 동전 위에 새겨져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 위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돈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하나님께는 여러분 자신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가이사에게 속한다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테르툴리아누스가 철학을 혹독하게 비판하기는 했지만 철학적 관념들과 체계적 진술을 저술에서 더러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영지주의의 특징적 이론인 유심론(Spiritualism)을 반대하는 가운데 그는 스토아 철학으로부터 실재론(Realism)을 빌어 왔으며 신학은 모든 점에서 명백한 실재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종의 실재가 취하는 형체를 뜻한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비유형적(incorporal)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이 같은 논리로 실재의 유형성을 하나님의 속성에까지 연결시켰으며 또한 영혼이 보이지 않는 형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서도 시사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영혼의 증언에 관하여 De Testimonio Animae』에서 영혼은 선천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혼이 육체와 전혀 다른 물질인 묽은 물질로 만들어졌으며 물질로 만들어진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므로 영혼도 창조물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
그리고 영혼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에 임신되는 순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에 의해서 창조될 수는 없으며 물질로 태어나긴 하지만 육체와는 달리 사망하거나 멸하지 않는다고 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도 형체적이라고 했는데 이는 스토아 철학의 영향이다.
그는 형체가 없는 영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인식론적으로 믿음과 이성에 관한 기본적 구분방식을 알았고 믿는 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다.
믿음의 지식과 이성의 지식이 같지 않음을 안 것이다.
그는 믿음의 지식이 이성적인 증거와 상관없이 나름대로 지혜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 같은 사고는 그가 예수의 부활에 관해 말한 데서 발견되는데 “이 일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확실한 사실이다”라고 했다.
부활하는 것이 모순이므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올바른 인생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인생이라며 창조물이 창조주에게 복종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에게 있어서 계명은 하나님의 자존심의 표적이므로 창조물이 창조주의 뜻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를 법적 관념인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로 정의하고 통치자는 선량한 창조물에게는 상을 주지만 사악한 창조물은 징벌하며 그 중에 면죄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구원을 베푼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창조주는 거저 구원을 베푸는 것이 아니며 자존심의 표적이 되는 자기의 계명을 따르려고 결심한 자의 회개와 세례를 통해서만 구원의 손길을 펼치므로 회개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용서라는 값을 치러야 가능한 것이라 했다.
이렇게 그는 바울의 가르침대로 구원을 창조주의 은혜로 이해했다.


2세기 초 감독들은 교회가 교인들에게 얼마나 엄격한 윤리를 요구해야 하느냐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는 테르툴리아누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는 세례를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로 정의했으며 세례 받은 후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존재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신생아를 세례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성인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한 번밖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존재하므로 회개와 병행되는 세례를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밖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란 우상숭배, 간음, 살인, 배교행위 등이다.
이런 죄는 참회를 통해서 한 번밖에 용서받을 수 없고 만일 다시 범할 경우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으로 참회한다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구원에 대한 당시 교회의 역할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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