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네우는 이집트 사람 발렌티누스(Valentinus)를 특히 비난했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소아시아 학파를 대표할 만한 사람은 프랑스 남부 리옹(Lyons)의 감독 이레네우스였다.
이레네우스는 요한의 신학을 받아들였지만 바울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테르툴리아누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종교문제에 있어서 철학적 사변을 반대했다.
그는 영지주의가 철학을 추종한 종교의 결말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했다.
그는 선천적(a priori) 사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사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지며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무엇을 행했느냐 하는 따위의 무용한 질문에 정력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를 유일한 철학으로 보는 변증가들의 견해에 반대했다.
그는 철학이 신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하나님의 계시가 단순하지만 새로워서 그리스 철학보다 훌륭하다는 견해에도 반대했다.
그는 전통만이 유일한 믿음의 근원이라 여기고 오로지 성경의 통일적 요약에만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런 점이 훗날 가톨릭 교의학(Catholic dogmatics)의 아버지란 영광스러운 칭송을 받게 한 이유일 것이다.


소아시아의 서머나(Smyrna)에서 태어난 이레네우스는 어렸을 적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Polycarp, 70-155)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폴리캅은 요한의 제자였다.
이레네우스는 로마에서 수학했다.
177년에 교황 엘루데루스(Eleutherus)를 만나 소아시아에서 몬타누스주의에 관한 논쟁으로 감독들 사이의 불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알리고 소아시아에 관용을 베풀 것을 호소했다.
이 시기에 그는 몬타누스주의에 동조했다. 그해 리옹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탄압이 있었으며 감독 포디누스(Pothinus)가 참수되었는데 이레네우스는 포디누스의 뒤를 이어 178년에 감독으로 임명받고 이듬해 리옹으로 돌아왔다.
순교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황제 세베루스(Severus)가 그리스도인을 탄압하기 전인 200년경에 사망했다.


이레네우스는 계시의 내용이 단순히 새로우면서 보다 나은 철학에 불과하다는 자들의 견해를 비판했다.
그에게는 성경적 전통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그는 구약과 신약성경을 수단으로 하지 않고서는 계시와 본래의 전통들이 사람에게 도달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주장하여 가히 성경주의 신학자라고 말할 만하다.


이레네우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태초부터 함께 존재했다고 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계시로 정의하면서 유일신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복음, 창조와 구원이 온다고 했으며 하나님을 지식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는 오직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오로지 자각하는 분으로 그분의 자각에는 인류가 포함되며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류에게 접근하고 인류는 사랑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떠나서 대상물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섭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에 관해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레네우스는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는 법이 없고 늘 로고스와 지혜와 더불어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로고스란 물론 그리스도를 가리켰으며 지혜는 성령을 가리켰다.
그는 로고스를 하나님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지혜를 현존으로 이해하였다.
삼인조(trias)라는 말로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에서 한 실체라고 먼저 주장한 사람은 테르툴리아누스였는데 이레네우스의 신학에서도 이 같은 개념이 발견된다.
그는 삼위가 본질에서 일체를 이루기 때문에 우주의 근본이 되는 원동력인 로고스도 하나라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보이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현존임을 강조한 말이다.


이레네우스는 물질이 사악하다는 영지주의자들의 관념에 반박하면서 사람은 본래 선하게 창조되었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그는 사람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에게 불순종했기 때문에 사악해졌으며 따라서 물질도 본래 사악한 것이라고 인식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관념을 배격했다.
대신 이제라도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영생을 누릴 수 있으며 신성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거할 수 있다는 구원론을 폈다.
그리스인은 영혼의 불멸하는 영원한 삶을 천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했는데 이레네우스는 이 같은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불멸하는 영혼의 영생을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의 결과로 이해했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적으로 보지 않았으므로 그는 죄에 대한 책임을 영혼과 육체가 따로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육체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함께 죄를 짓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레네우스는 아담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양(similitudo) 또는 영생을 상실했지만 하나님 본래의 형상(image)마저 상실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그가 모양과 형상을 구별했으며 모양과 형상에 있어서 사람은 하나님과 같다고 했음을 볼 수 있다.
모양과 형상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구별은 404년에 제작된 첫 라틴어 공식성경 불가타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 (이미지, image)을 따라 우리의 모양 (유사함, likeness)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그에게 있어서 모양과 형상은 멸할 수밖에 없는 이성적인 존재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지만 이것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기도 했다.


이레네우스는 185년에 저서 『모든 이단에 대적하여 Adversus Omnes Haereses』에서 영지주의자들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에 대한 명확한 이원론을 비난하였다.
그는 이집트 사람 발렌티누스(Valentinus)를 특히 비난했는데 발렌티누스는 로마의 교사로서 165년경 교회를 배척한 영지주의자였다.
이레네우스는 인류가 선과 영생을 상실한 것을 아담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한 것의 결과로 보았다.
또한 그는 바울의 영향을 받아 예수를 제2의 아담으로 인식했으며 그 제2의 아담이 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써 선과 영생을 회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한의 신학을 받아들인 이레네우스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 그리스도가 사람의 형상으로 지상에 온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고 보았다.
또한 아담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가 회복했으므로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는 예수의 말을 따르면 하나님과 유사해지는 영생을 얻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가 초월적인 사랑으로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산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유사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역설했다.
예수 안에서 인류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본 이레네우스는 아담으로부터는 사망이 비롯했지만 예수로부터는 영생이 비롯했다는 구원론을 제기했다.
그는 구원을 재현(recapitulatio)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하늘과 땅의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가 된다는 바울의 말을 재현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0)


그는 또한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이브를 연계함으로써 마리아에 대한 숭배사상을 고취시켰다.


이브가 불순종으로 매듭지은 것을 마리아가 순종으로 풀었다.
이브가 불신앙에 매인 것을 마리아가 신앙으로 해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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