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네우스로 대표되는 소아시아 학파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레네우스는 『모든 이단에 대적하여』에서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을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복음서에 관해 언급했다.
복음서는 그 이상이나 이하가 될 수 없다.
세상은 네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근간이 되는 네 바람이 있으며, 교회는 지상에 심은 씨앗이고, 복음서는 교회의 기둥과 기초와 생명의 호흡이므로 교회가 네 개의 기둥(복음서)으로 서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네 복음서는 결백함을 호흡하도록 만들어 흥분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제공한다.
이렇게 이레네우스 신학의 특징은 구원론으로, 그 구원은 죄를 용서받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사는 승리이며 예수를 사랑하고 의지함으로써 얻게 되는 도덕적 변화이다.
신성과 인성을 모두를 지닌 그리스도에게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육체를 부패하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적격자가 될 수 있다.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주의 도덕적 주재자가 되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신성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므로 우리는 예수를 사랑하고 의지할 때만이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이레네우스는 감독이란 사도가 선택한 사람으로 그에게는 신학의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사도들에 의해 선택된 교회의 책임자들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된 감독들의 이름을 일일히 거명할 수 있다.…
만일 사도들에게 정신적으로 성숙한 비밀스러운 신비가 있었다면 그들은 개별적으로 감독들에게 그 신비를 물려주었을 것이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후계자들이 교회를 목회하는 데 있어 온전하기 때문에 비난받을 만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이레네우스는 예수가 사도들에게 복음을 주었으므로 그 사도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가르친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하며 예수의 말을 인용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16)
이레네우스가 폴리캅에 관해 기록을 남겼으므로 우리는 그에 대해 알 수 있다.
이레네우스에 의하면 폴리캅은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만난 사람들과도 어울린 적이 있다.
폴리캅은 사도에 의해서 서머나(Smyrna) 교회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레네우스가 어렸을 적 폴리캅은 노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이 박해받을 때 순교했다.
이레네우스는 폴리캅이 사도로부터 직접 배운 것을 교인에게 가르쳤으므로 사도들의 가르침이 교회를 통해서 전래될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폴리캅의 후계자들은 아시아의 교회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폴리캅은 로마를 방문했을 때 발렌티누스와 마르시온으로부터 교사 받은 많은 이단자를 개종시켜 교회로 인도했다고 했다.
이레네우스는 폴리캅이 마르시온을 만난 에피소드를 전했는데 마르시온이 폴리캅에게 “날 알아 주시오!”라고 말하자 폴리캅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고 한다.
“당신을 알아 주리다. 당신이 사탄의 첫 아들임을 알아 주리다.”
결론적으로 이레네우스는 교회 내 영지주의자들을 퇴치하는 일에 앞장을 섰으며, 그들을 반박하는 글을 통해서 창조의 하나님과 구속의 하나님이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시를 나타내는 그리스도를 신인간(god-human)으로 묘사하면서 그가 인류를 구원하는 중보자라고 했다.
이레네우스는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유의지를 남용함으로써 하나님에게 불순종했으며 아담의 원죄로 인해 인류가 타락했다고 했다.
타락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죽음의 권세에 희생되는 것을 뜻하며 육체의 죽음은 타락의 상태를 다소 회복시켜 주는 소극적 구제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류를 새롭게 만들고 만물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육신되었다는 것이 이레네우스의 주장이다.
이레네우스 신학의 의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보존해서 그 전통 위에 가톨릭 교회의 체계를 세운 데 있다.
그에 의해서 정경 전체에 대한 이해와 고찰이 처음 제기되었으며, 구약과 신약성경의 신학적 연계성이 암시되었고, 바울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의 신학은 성서적 색채가 짙었으며, 사도적 전승에 대한 경의가 나타났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학이었다.
그의 신학은 가톨릭 교리를 제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는데 이런 점에서 보면 사도 이후 최초의 신학자라고 말할 만하다.
이레네우스로 대표되는 소아시아 학파와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 및 테르툴리아누스로 대표되는 북아프리카 학파는 비교해 볼 만하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대체로 필로와 그리스적 변증가들을 본받아 로고스 개념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들의 임무는 영지주의에 대항해 참된 교회적 영지주의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가장 저명한 신학자들은 비복음주의적인 사변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이상주의와 사변적 경향은 북아프리카 학파의 현실주의적인 철저한 실천적 경향과 상반되었다.
이레네우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북아프리카 학파의 양 극단에 비해 보다 초기단계를 대표한다.
니브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로고스 개념을 신학의 원리로 사용한 오리게네스가 그리스도교를 일종의 철학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과오를 겨우 면했으며 무제약적인 유심론(Spiritualism)의 미궁에 빠졌다고 평가한다.
한편 모든 관심을 자연에 집중시킨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나님과 영혼에 대해서까지도 그 본질을 정의하려고 했으므로 편파적인 현실주의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레네우스는 아주 건전한 성서주의와 전승에 대한 건전한 태도와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에 의해서 이들 양 극단의 위험성을 모두 극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