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트에게 가장 고상한 인생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진보주의적 사고를 가진 클레멘트는 하나님과의 교섭이 남자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가능하다고 말함으로써 남성과 여자 사이에 성적인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여성으로 상상한 적도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친절하게 달래 주는 아버지의 가슴인 말씀으로 피신한다.
하나님만이 사랑의 젖을 자녀들에게 적절히 공급해 주며 하나님의 가슴을 빨 수 있는 사람은 정녕 복이 있다.
철학이 클레멘트에게 미친 영향은 그가 지식을 신앙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했다.
그는 철학의 영향에 의해 신앙과 지식을 구분했다.
그에 의하면 신앙은 단순히 권위에 의존하는 그리스도인의 신념으로, 책벌에 대한 두려움과 보상에 대한 소망이 관련되어 있다.
반면 지성은 고상한 형태의 지식으로 권위에 근거해서 믿기보다는 자신의 확신에 근거해서 믿음의 내용을 평가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지식은 인간을 사랑으로 인도하며 사랑은 두려움에 기인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클레멘트는 지식이 믿음의 완성을 이루게 하는 보다 수준 높은 단계임을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지식만이 완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든다고 보았다.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인을 계시를 통해 불멸의 지식 또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는데 불멸의 지식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서 영지주의적인 요소가 발견된다.
그는 무지가 죄라는 스토아 철학 개념을 받아들였으며 계시를 통한 불멸의 지식이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한다고 믿었다.
스토아 철학의 엄격한 금욕주의 윤리를 받아들여 금욕주의를 신성한 생활태도로 여겼으며 육욕을 자제하는 것을 신성한 행위로까지 여겼다.
그는 진정한 지식이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행위를 하게 만든다고 가르친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사악한 행위는 무지로부터 비롯하는 것이며 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의 이러한 가르침을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물질은 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하다고 믿는 이원론주의자들에게 금욕주의에 기초한 윤리는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결론이었다.
클레멘트에게 가장 고상한 인생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영혼이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는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철학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철학을 모세의 율법에 비교하며 철학이 그리스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고 보았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분이라면서 클레멘트는 플라톤의 말과 성경을 인용했다.
우주의 아버지가 되는 창조주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발견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지식의 주제와도 같아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출애굽기 20:21)
볼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하나님이지만 그분은 오래 전부터 현인들에게 알려져 있었음을 강조하며 클레멘트는 오르페우스의 말을 인용했다.
한 분 뿐인 온전한 분이 존재하는데 만물이 그분으로부터 태어났다.
그분을 본 사람은 없으나 그분은 모든 사람을 보고 있다.
난 그분을 볼 수가 없는데 그분은 구름에 에워싸여 있다.
사람은 성장하는 육체와 뼈에 단지 작은 동공을 눈에 지닌 존재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이라면서 클레멘트는 바울의 말도 인용했는데 바울은 자신이 몸소 체험한 바를 익명의 체험처럼 말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린도후서 12:2-4)
클레멘트는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 찬 신비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바울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통치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2:6-7)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그는 예수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rverus)가 그리스도인을 탄압한 202년 탄압을 피해 클레멘트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났는데 그때 그는 52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