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론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성부, 성자, 성령이 각기 인격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실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신약성경에는 삼위일체라고 지적해서 말할 만한 구절이 없다.
삼위일체론은 신학자들의 성과이다.
다만 신약성경에는 삼위일체와 관련해서 추론할 만한 구절이 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8: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고린도후서 13:13)


마태복음의 구절은 세례의식과 관련이 있고 바울의 말은 기도문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장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신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음을 의미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을 병기함으로써 삼위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삼위 모두가 작용했음을 기록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린도전서 12:4-6)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21-22)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0-22)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13-1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디도서 3:4-6)


곧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베드로전서 1:2)


2세기 말엽 교회에서 단일신론(Monarchianism 군주신론이라고도 한다)이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다.
군주신론적이란 개념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신격의 통일성에 관해 언급한 대목에서 비롯했다.
단일신론은 삼위일체를 부정했으며 하나님이 성자와 성령의 모습으로 자기를 계시했다는 것도 부인했다.
단일신론자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하게 된 것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이었다.
그리스인은 신이 세상에 출현했다던가 직접 활동했다는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일신론 논쟁은 3세기에 상당 기간에 걸쳐서 지속되었으며 신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위적(Unitarian) 신학은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신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었다.
단일신론은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과 양태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으로 구분된다.


역동적 단일신론의 대표주자는 190년 그리스도인 박해 때 비잔티움(Byzantium)으로부터 로마로 피신한 데오도투스(Theodotus)였다.
데오도투스는 로고스-그리스도론을 반대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만을 주장했다.
그는 의로운 면에서 예수가 어느 누구보다도 우수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가 권능으로 예수에게 임한 후에는 계속해서 그리스도로서 활동했다고 보았다.
역동적이란 말은 그래서 붙여진 것으로 특정의 시간에 예수에게 신적 권능이 갖추어지기는 했지만 예수는 하나님이 된 적이 없으며 하나님과 연합된 것은 부활한 후라는 주장이다.


역동적 단일신론을 지지한 사람은 260년경 안디옥의 감독 사모사타(Samosata) 사람 바울(Paul)이었다.
바울은 로고스 개념을 부정하지 않고 이성과 지혜가 사람의 속성에 포함된다는 의미에서 이성과 지혜를 로고스와 동일하게 간주했다.
바울은 로고스는 독자적인 본질이나 위격이 아니며 하나님의 신성한 지혜가 예수에게 내재했더라도 오직 신성한 능력으로 존재했을 뿐 위격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268년에 소집된 안디옥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받았다.


양태적 단일신론(Modalism Monarchianism)은 소아시아에서 나타난 신학인데 노에투스(Noetus)와 제자들이 이 신학을 로마로 운반했다.
노에투스는 로고스-그리스도론과 그 안에 함축된 종속론적 경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성부만을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는 신격을 삼위로 구분하는 것에 반대했다.
로마 양식론의 선두자 프락세스(Praxes)는 노에투스의 이론을 완화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성부의 고난으로 이해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같은 신학을 성부고난설(Patripassianism)이라 칭했다.


양태적 단일신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양식론자 사벨리우스(Sabellius)였다.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인 동시에 동일한 본질에 속하므로 명칭으로만 구별될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이 육체, 혼, 영으로 구성되었듯이 신의 본질 또한 삼위로 구성되었다 보고 하나님을 태양으로, 성령을 태양으로부터 오는 열로, 성자를 태양의 빛으로 비유했다.
성령과 성자는 성부가 세상에 나타날 때 취하는 형태로 하나님이 자기를 현현하는 세 가지 존재양식(modi)이라고 보았다.
신의 본질은 하나라는 것과 신격에 있어 삼위는 하나이자 동일하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양태적 단일신론은 사벨리안주의(Sabelliannism)로 불리었는데 사벨리우스가 261년에 이단으로 정죄받자 이 이론은 배격되었다.


역동적 단일신론은 테르툴리아누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 사람들의 신학과 달랐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신성을 성자의 성부에 대한 동질(consubstantiality)로 설명했고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는 로고스가 신성으로부터 유출되었기 때문에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라고 했다.
양태적 단일신론은 삼위의 위격들 간의 구별을 반대하면서 성자와 성부를 동일하게 그리고 성령을 성자 및 성부와 동일하게 취급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로고스-그리스도론으로 삼위일체론을 진전시켜 삼위를 계시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세 본질로 보았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문제는 3세기 신학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였다.
당시는 예수에게 신성과 인성 모두 있다는 신인양성론이 유력했지만 신인양성론은 신이 둘이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런지 몰라 혼란스러워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사람처럼 보였을 뿐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예수이며 그리스도는 수난을 당한 적이 없다는 가현설을 주장했다.
가현설(docetism)은 그리스어로 ‘처럼 보인다(to seem)’라는 뜻이다.
가현설은 예수의 생애를 일종의 마술이나 가현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의 그의 수난과 죽음이 자신들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예수가 가현으로 수난당하고 사망한 것이었다면 자신들이 소망한 구원도 마찬가지로 환상에 불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낙담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예수를 아예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또는 그를 현인, 선지자, 훌륭한 교사, 신비주의자, 또는 천사들 중 하나쯤으로 여겼다.
예수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원해서였으므로 만일 예수가 인간에 불과하다면 구원에 대한 소망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감독들이 그리스도의 신성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자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교회 분열의 심화가 제국의 분열로 파급될 것을 우려해서 325년 5월 감독들을 소아시아 북부 니케아로 소집했다.
그는 감독들에게 모든 교회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교리를 제정하라고 명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