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잘 흥분하는 테르툴리아누스는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전승에 권위를 부여하는 일에 서슴치 않았다.
라인홀드 제베르크(Reinhold Seeberg)는 테르툴리아누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곧잘 흥분하는 테르툴리아누스는 독을 품은 신랄한 재담을 즐겼으며 타고난 음울한 격정을 극복하지 못했다.
웅변가로서 그는 과장된 표현으로 저술했지만 그리스도교적 사상에 있어서는 독창성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는 연설할 때 맹렬한 분노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이 같은 순간에도 정확하게 조리에 맞도록 연설의 끝부분을 여미어 나가곤 했다.
그는 실천적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심오하기보다는 해박하여 많은 논리를 채택했고, 그러면서도 잠시나마 자신의 정진하는 목표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실천적 동기에서 저술하면서 신학적이든 철학적이든 지식 자체를 위해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어느 누구보다도 교회의 권위주의를 강조했다.
신앙의 표준과 상충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곧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믿음은 절대적 순종으로 찬동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는 믿는 바가 불합리하면 할수록 믿음이 발전되는 계기가 더욱 잦아지고 믿음의 대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명료해진다고 보았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성부와 성자, 성령을 한 데 묶어 처음으로 삼위일체(trinitas)란 말로 묘사했다.
그는 삼위의 위격이 본질에서 일체한다고 했는데 본질이란 존재의 힘(power of being)을 의미했다.
그는 삼위가 존재의 힘 안에서 스스로 현존하는 것이라 하고, 그리스 철학의 개념에 의해 하나님을 영원한 이성(ratio), 또는 로고스, 또는 정신적인 존재로 정의했다.
그는 삼위를 순위적으로 설명했는데 우주가 막 창조될 때 성부로부터 성자가 태어나 두 번째 분이 되었고 세 번째 분으로 태어난 것이 성령이라고 했다.
그는 신성한 본질 또는 존재의 힘을 세 사람(persona) 모두가 지녔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사람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person)이 아니라 그리스어 프로소폰(prosopon)을 의미한다.
프로소폰은 가면을 쓴 배우라는 뜻으로 그의 삼위일체론은 세 개의 가면을 쓰고 스스로 현존하는 한 분이 하나님임을 말하는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성부와 성자를 구별할 수 있지만 두 분이 분리될 수는 없다면서 이를 비유로 설명했다.
뿌리가 나무를 내고 태양이 광선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냈다.
뿌리와 나무는 분명히 다른 종류에 속하지만 상호 연합되어 있다.
이것은 물의 근원과 강이 두 형체를 띠지만 분리될 수 없는 것과 태양과 광선이 두 개의 형체를 띠지만 하나의 근본인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여타의 어떤 것으로부터 발원되어 나온 것은 그 발원지에서 나오는 이차적인 것이 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둘이 분리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과 영혼까지도 형체적이라고 했는데 형체가 없는 영적인 것이란 있을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니브와 헤이크는 공저 『기독교 교리사』에 테르툴리아누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 신학자들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과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 신학자였다.
그의 근본원리는 실재론이다.
자연과 세계의 현실성, 감각의 신빙성, 영의 형체적 실체의 중요성 이런 모든 것들이 사상의 기초를 이룬다.
그는 예민한 감각으로 창조물 가운데서 신적인 것을 간파했는데 즉 우주의 질서를 통해 비치는 신적 이성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자연을 연구하면서 우주 안에 있는 창조주의 진리의 자취를 더듬어 보며 영혼을 분석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는 일을 즐겨했다.
그래서 이 같은 실재론은 테르툴리아누스 신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영지주의나 편벽된 유심론과의 투쟁에 있어서 무기가 되었다.
이 같은 실재론에서 출발해서 그는 하나님의 실체성, 인류와 역사의 단일성, 인간 영혼에 있어서의 죄의 기원, 계시의 역사성, 그리스도의 신인간으로서의 품격에 관한 진리, 그리고 구속과 육체적 부활의 사실 등을 논증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함에 있어서 그는 우주론적 논증과 자연적 목적론적 논증에 중점을 두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진리를 증명하기 위한 이론을 전개함에 있어 그리스 철학에 의존한 변증가들과는 달리 철학의 개념을 병용하지 않았다.
그는 철학자들을 “이교의 족장들”이라고 불렀으며 플라톤을 족장들의 두목이라고 했다.
그는 죽음에 직면한 소크라테스의 평정을 가리켜서 “강제된 혹은 가장된 침착성”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철학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
특히 스토아 철학의 영향은 신학적 개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영혼을 형체라고 믿었으며 하나님의 영혼까지도 형체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영혼유전설(traducianism)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 같은 주장은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의 신학에 양립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그는 세계의 현실성, 감각의 신빙성, 영혼의 형체적 실체를 강조하며 우주의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이성 즉 그리스도를 간파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실체성, 인류와 역사의 단일성, 영혼에 있어서 죄의 기원, 계시의 역사성, 그리스도의 신 인간으로서의 품격, 구원과 육체적 부활도 논증하려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에 관한 논증은 우주론과 목적론으로 가시화되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어떻게 보면 바울의 신학에 반발한 사람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면 그의 신학을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교인을 수퍼맨으로 여겼는데 성령이 교인에게 직접 역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령이 교인에게 직접 역사한다는 생각은 교회에 대한 바울의 정의와 일치한다.
당시에는 성령을 체험했느냐 못했느냐 하는 것이 교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었는데 테르툴리아누스는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근본적인 신앙의 문제가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