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우스
Arius, 250-336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4세기 교회가 한창 신학적 논쟁에 휘말려 있을 때 단일신론은 한층 첨예화한 양상으로 다시 제기되었다.
이 신학은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오리게네스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테르툴리아누스와 유사한 방법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부속되었다는 종속설을 주장했다.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비유할 수 있는 태양으로부터 유출되는 광선에 불과하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종속설의 요지이다.
종속설은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에 의해서 더욱 부각되었다.
아리우스는 스스로 악역을 맡은 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하지 못함을 명확하게 해 두려고 애썼다.
역사가 소크라테스는 440년에 아리우스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만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낳았다면 그리스도는 태어난 분이므로 그분이 존재한 시작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에 시간이 존재했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이 같은 논리에 의해 그리스도의 존재는 무로부터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리우스는 오리게네스가 사망하기 수년 전 리비아(Libya)에서 태어났고 안디옥 사람 루시안(Lucian)으로부터 수학했는데 루시안은 안디옥 교회의 장로(presbuteros)로서 학파를 결성하고 제자들에게 신학을 가르쳤다.
루시안은 그리스도인이 탄압받을 때 9년 동안 투옥되었다가 우상에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수당했다.
62살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감독으로부터 안수 받고 장로가 된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 대부분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을 받아들였다.
그는 셀수스에 반박한 오리게네스의 논리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창조되지 않은 분의 본성과 창조된 만물의 성질 사이의 중보자”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아리우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 모두 신성을 지닌 분이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성령에 비해 우월한 분이라고 주장한 오리게네스의 신학에 동조했다.
그러고 보면 아리우스의 신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는 삼위의 신성에 대한 오리게네스의 순위적 차별을 확대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비해 월등히 우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라고 보았다.
또한 성령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아리우스는 오늘날의 정황에서 말하면 응용심리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시가의 형식으로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일할 때 자신의 이론을 노래로 외울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영지주의자들의 창조신(demiurge)과도 같은 신화적 표상인 반신 반인간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신성을 지닌 분이지만 하나님과 동등한 분은 아니었다.
이런 가르침은 변증가들과 테르툴리아누스의 이론에서도 나타난 적이 있는 것이다.
아리우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하나님만이 홀로 진정한 신적 존재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태초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지만 창조되기 전에도 이미 시간이 존재했으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는 시작이 있지만 … 하나님에게는 시작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과는 달리 그리스도는 영원한 존재가 못 됨을 지적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우주 사이에 내재하는 신성한 힘으로 이해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올림퍼스의 많은 신들 중 하나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예수의 영혼이 되었고 그 예수가 의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이 부여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영원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며 하나의 창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본질에서도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성에서도 하나님의 참된 그리스도나 지혜도 아니며 실로 하나님의 창조물과 피조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는 아리우스의 신학에 단호하게 대처했으며 321년 알렉산드리아에 대규모 종교회의를 열어 그를 파문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20대 초반의 고집불통 알렉산더의 비서 아타나시우스 또한 아리우스 신학을 비난하는 일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는데 마치 아리우스를 비난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유별나게 검은 피부, 매부리코, 그리고 붉은 색 수염을 한 아타나시우스는 키가 작아 난쟁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는 매사에 자신의 주장을 굽혀본 적이 없었으며 논쟁을 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야 말았다.
아리우스 신학에 대한 그의 반박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피조물은 피조물을 구원할 수 없는데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게 된다.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데 예수가 사람을 구원했으므로 그는 하나님이라는 논리를 폈다.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상반된 주장으로 교회가 분열될 조짐을 보이자 콘스탄티누스는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5월에 약 300명의 감독들을 니케아로 모이도록 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종교회의였다.
감독들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니케아로 갔고 아타나시우스도 알렉산더의 수행원으로 니케아로 향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신앙의 규범이 되는 신조를 제정하라고 명령했으며 그 결과 『니케아 신조 Nicaea Creed』가 제정되었다.


결론으로 말하면 아리우스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리스도를 독립된 인격체로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가 유일신교임을 보존하려고 한 것이다.
두 가지 목적을 통합하기 위해서 그는 종속론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들은 그가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반신 반인간의 창조신(demiurge)으로 취급한다고 비난했다.
아리우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진정한 본질의 차이가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또 다른 종속론을 주창한 것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만이 신적 존재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했지만 하나님으로까지 격상시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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