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신조 2
Nicaea Creed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서방 교회 감독들은 그리스도의 본질이 하나님과 같다고 했지만 동방 교회 감독들은 본질이 같더라도 속성으로 보면 열등하다고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도 서방과 동방의 첨예한 신학적 대립을 무마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
당시 그리스도인의 수는 제국 인구의 20퍼센트 미만에 불과했지만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열심이며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이 때문에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의 분열이 정치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염려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어떤 이유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원래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태양숭배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친숙했는데 그들은 태양의 운행이 그리스도가 탄 마차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태양숭배자는 일요일에 동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숭배를 표시하는 의식을 가졌으며 12월 25일을 태양의 날로 기념했다.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를 버린 적이 없으며 태양을 자신의 메달에 새겼다.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수도를 옮겼을 때도 그는 공회광장에 태양신 동상을 세웠다.
그는 일요일을 휴식의 날로 정했으며, 재판정을 닫았고, 농사짓는 일 외에는 노동을 금하도록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키가 크고 건장한 몸에 눈썹이 짙고 턱이 툭 튀어 나왔으며 성격이 사나워서 화를 내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포악성은 맏아들, 두 번째 아내, 사랑하는 여동생의 남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을 처형한 데서 나타난다.
그는 늙어갈수록 포악성과 괴팍한 행위가 심해졌다.
목덜미는 황소의 목덜미처럼 늘어졌지만 그는 유행하는 옷을 즐겨 입었으며 팔을 보석으로 장식했는데 조카 줄리안의 말로는 꼴불견이었다고 한다.
유세비우스는 그의 옷차림이 군중에게 호감을 주었다고 비꼬며 자기는 황제의 옷차림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다고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아주 미신적인 사람이었다.
당시 대부분 직업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모든 종교에 존경심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년에 병에 걸릴 때까지 세례를 받지 않았는데 세례를 임종할 때까지 미루는 것은 당시 풍조였다.
세례를 죄에 대한 용서를 받는 의식으로 믿었으므로 사람들은 가능한 용서받기를 훗날로 미루었다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여생을 마치려고 했다.


그러나 정치에서 콘스탄티누스가 보여 준 전략은 빼어났다.
그는 그리스도교 국가를 건립해서 자기가 제사장 왕(Priest-King)이 되고 싶어 했다.
유세비우스는 어느날 감독들과 함께 있는 콘스탄티누스를 발견했는데 갑자기 콘스탄티누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은 감독으로서 교회를 취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네. 하지만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감독으로서 교회 밖의 문제를 담당하고 있지.”


콘스탄티누스는 바울의 신학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지만 유세비우스의 말에 의하면 오리게네스의 신학에 관해서는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은 후에 사도와 같은 반열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랐다.
결국 그의 관은 양쪽으로 사도들을 상징하는 동상들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열세 번째의 으뜸가는 사도와도 같은 모습으로 시신이 안치되었다.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aea)에 참석한 감독은 약 300명에 이르렀지만 서방 교회 감독은 6명에 불과했다.
회의는 니코메디아의 감독 유세비우스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감독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첫째,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본질에서 동등하다고 주장한 감독들은 숫자에서 열세를 나타냈지만 강한 신념을 가진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주도되었다.
둘째, 아리우스파는 사회자 유세비우스에 의해 주도되었다.
셋째, 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감독들은 화평을 원했는데 가이사랴의 감독 유세비우스가 이 그룹에 속하였다.


알렉산더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탄생이란 개념에 확고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곧 태양과도 같은 하나님의 영원함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빛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하며 그리스도의 아들됨은 사람의 아들됨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수준이라고 보았다.
그는 빛과 태양과의 관계에서처럼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존재에 진정으로 필요한 부분으로 인식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신학을 성토하였고 신조를 제정하는 데 그의 이론이 포함되지 못하도록 전력을 다해 저지했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시간이 존재했으므로 그리스도가 영원한 존재자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한 반면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분이라서 마땅히 영원한 존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유한한 존재냐 아니면 태어난 영원한 존재냐 하는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가 그리스도에게 신성이 있다고 말하더라도 두 신적 존재를 믿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 한 분과 창조된 하나님인 또 다른 한분을 믿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로 비난했다. 아타나시우스는 말했다.


그들은(아리우스파) 그리스도가 피조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성경을 존중해서 그리스도를 계속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를 바라는데 그들에게 두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자 유세비우스는 아리우스파의 신조를 회의에 제출했지만 부결되었다.
가이사랴의 감독 유세비우스는 가이사랴의 신조에서 그리스도를 ‘창조된 형상’이라고 했다.
이 신조는 아리우스파에게는 물론 대다수의 감독에게도 흡족한 내용이었지만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는 이 신조에 반대를 표명했다.
스페인의 코르도바 감독 호시우스의 제의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동질(homoousios)이라는 말을 삽입하기로 합의를 봄으로써 동질이란 말이 결의안에 추가로 삽입되었다.
니케아 신조에는 가이사랴의 신조가 포함되었고, 그리스도는 ‘창조되지 않고’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태어났으며’,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이란 문구가 삽입되었다.
니케아 신조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독생자(the only-begotten)이고, 하나님의 하나님이며,
빛의 빛이고,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며,
태어난 분이지 창조된 분이 아니고,
하나님과 더불어 한 실체(또는 동질, homoousios)가 되는 한 분인 주를 믿으며


신조에는 아리우스에 대한 저주의 문구도 적혀 있다.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도 있다고 말하는 자들,
아들이 탄생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들,
아들이 무에서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하는 자들, 성자가 성부와 다른 본질 또는 본체에 속한다고 말하는 자들,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 만들어졌거나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교회가 저주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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