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사랑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 사랑을 셋으로 구분한 후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69:32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를 인용한 후 하나님을 이미 안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을 경고하기 위해서 시편 105:4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 지어다”와 고린도전서 8:2-3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분을 아는(has known him) 것이 아니라 그분에 의해서 알게 된(is known by him)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은 노력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 그분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바울의 가르침과 일치했다.
그는 성부와 성자, 성령은 세 인격체이지만 우주를 창조하고 통치하는 분은 유일신이기 때문에 세 인격체는 상호 관련이 있으며 본질에서는 동등한 자격을 가진 한 개체라고 보았다.
이에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한 후 성부와 성자, 성령을 나 자신, 사랑하는 대상, 사랑 자체에 비유하며 삼위일체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을 받는 사람이 없다면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 사랑을 셋으로 구분한 후 그는 사랑의 대상이 자신일 경우 셋으로 구분된 것은 사랑의 대상과 사랑 둘로 요약될 수 있다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므로 주체와 대상이 같아지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사랑이 참으로 존재한다면 사랑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므로 정신과 정신 스스로에 대한 사랑도 두 개의 영이 아닌 한 영이며, 둘이 아닌 한 본질이라고 했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즉 사랑과 사랑의 대상은 둘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사랑하는 사람이 없이 사랑이란 행위는 존재하지 않고, 사랑이란 행위가 존재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랑과 사랑의 대상은 둘이 아닌 일체이다.
또한 그는 정신과 영은 상호무관하게 본질로 존재하며, 몸과 어울려 사람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몸이 사라지더라도 정신과 영은 멸하지 않고 늘 존재한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인조를 이루고 있는 정신과 정신의 사랑, 정신의 지식은 하나를 이루며 정신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완전히 알게 될 때 비로소 서로 동등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정신이 스스로를 알게 되어도 스스로를 아는 지식이 자아를 능가할 수 없는 이유는 자아가 주체이면서 동시에 지식의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정신이 자아에 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지식은 정신에 상응하게 된다고 하며 자아에 관해 완전히 아는 자의식(self-knowledge)을 자아와 동등하게 취급했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삼인조 가운데 하나가 완전할 경우 셋 모두 동등해지고 완전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 개의 금반지를 예로 들어 삼위일체의 당위성을 설명했는데 세 개의 반지가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세 개의 반지를 녹여 한 덩이로 만들었을 때 삼위일체는 종지부를 고하게 되고 세 개의 반지는 본질에서 같다고 했다.
그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점은 구약성경의 무로부터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말이 그리스인에게는 생소했다는 것과 플라톤이 말한 창조는 근원이 되는 물질을 가상하고 신이 이에 대해 형상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조물주라기보다는 기술자 또는 건축가로 이해했다.
질료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것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신이 단지 그 형상만을 만든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같은 견해에 반대했다.
그리고 만물은 질료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은 질서와 정돈뿐만 아니라 물질까지도 창조한 분임을 역설했다.
금덩어리를 만든 분도 하나님이라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신이 자아를 알고 사랑하는 가운데 정신과 사랑, 지식의 삼위일체가 가능하다면서 정신은 지식과 관련해서 알고, 알았으며, 알 수 있고, 자아를 사랑하는 것과 관련해서 사랑하고, 사랑했으며, 사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사랑하는 정신은 사랑 안에 있고,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지식 안에 있으며, 지식은 알고 있는 정신 안에 있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정신이 자아를 알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과 지식 안에서이며, 자아를 아는 지식과 사랑하는 정신은 정신과 사랑 안에서 가능하고, 정신은 자아를 알고 있으며, 자아를 사랑하는 것을 또한 안다고 했다.
그는 정신의 삼인조가 각기 온전할 때 정신은 자아의 모든 것을 알고, 사랑하며, 자아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자아에 관한 모든 지식을 사랑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삼인조는 상호관련이 있으나 서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기 실체로 존재하며 동시에 하나의 실체 또는 본질이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이 선임을 시편을 인용해 지적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시편 135:3)


또한 창세기를 인용하여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훌륭하게 창조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31)


그는 만물이 아름답게 창조되었음을 찬양하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 자신은 얼마나 선한 분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은 선하시다”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고, 아름다운 만물은 보다 아름다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했지만 하나님 자신은 누구에 의해서도 창조되지 않았으며 본래부터 선하며 만물은 아름답기 위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시편 73: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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