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이 너무 높은 데 있고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해, 달, 별이 아름답고, 지상에 움직이는 모든 동물이 아름다우며, 공중을 나는 것들과 물에서 헤엄치는 모든 생물이 아름답고, 사람 또한 아름다운 것은 이들을 창조한 하나님의 인자함이 온 누리에 역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5)


또한 상호 비교되는 선한 것과 선한 것 자체를 구별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선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선한 만물의 창조주가 되는 하나님이야말로 얼마나 선하겠느냐며 탄복했다.
그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주 하나님, 전능하고, 자비로우며, 공의롭다"고 말하지 않고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라고 한 것을 두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우며, 공의롭지만 스스로를 가리켜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스스로 있는 자’라 말했음을 강조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애굽기 3:14)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HE WHO IS has sent me to you”라는 말로 지칭한 것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은 존재의 의미가 없으며 오로지 자신만이 궁극적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그분이 선한 분임을 알기 때문이며 만일 불의한 분을 찬양한다면 우리가 불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공의로운 분을 찬양하는 이유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또한 그분을 찬양함으로써 공의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공의를 우리가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분을 찬양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는 없더라도 그분이 창조한 만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이 찬양받을 만한 선한 분인 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너무 높은 데 있고 우리가 너무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달콤함(sweetness, 공동번역 성경은 상냥함이라고 번역했다)을 맛보기 어려워 그분이 중재자를 우리에게 보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하나님이 보낸 중재자를 통해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중재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가 단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를 따르더라도 결코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없으며, 예수가 단지 하나님일 뿐이라면 예수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결코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으로 성육신되었으므로 예수를 따라 그분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보자 또는 중재자인 예수는 천사들의 양식보다 더욱 달콤하므로 그는 천사들의 양식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진리에 비유했다.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시편 78:25)
천사들의 양식을 사람들에게 먹이셨으니
그들이 배불리 먹을 식량을 내려 주셨다. (공동번역)


그는 우리가 천사들보다 진리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했던 동일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라 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중재자로 지상으로 온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아우구스티누스는 천사들을 창조한 하나님이 몸소 사람의 형체로 지상에 와서 사람들에게도 천사들의 양식인 진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며 그 이유로 사람들이 “그 이름을 찬양”하게 되었다고 했다.
(“달콤하신 분을 위해서 그 이름을 노래하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욱 문맥에 어울릴 것 같다.)
그는 달콤한 분의 좋은 맛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한 말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켰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이름이니라) (출애굽기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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