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믿음도 의지의 행위로 간주했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예로서 뼈(os)의 발음을 짧게 해야 할지 길게 해야 할지의 문제를 두고 발음을 짧게 하면 단수를 가리키는 뼈(ossa, a bone)가 되지만 길게 하면 단수를 가리키는 입(ora, a mouth)이 된다고 했다.
이런 경우 앞에 나타난 문장을 이해해야 해석이 가능한데 그리스인에게는 입(stoma)이 아닌 뼈(ostoun)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올바른 발음은 옆에 사용된 단어에 따라서 결정된다면서 다음의 구절을 예로 들었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21)


아우구스티누스는 바울이 만일 “내가 경계한 Praedico”이라고만 쓰고 “내가 전에 경계한 것 같이 as I warned (praedixi) you before”란 말을 쓰지 않았다면 앞에 말에 대한 참조 없이 중간에 있는 음절 경계(praedico)의 발음을 길게 해야 할 것인지 짧게 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바울이 “내가 전에 설교한 것 같이 as I preached (praedicavi) to you”라고 하지 않고 “내가 전에 경계한 것 같이”라고 적었으므로 중간에 있는 음절을 길게 발음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구두점과 발음 말고도 성경에는 모호한 구절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유사한 방법으로 해석할 것을 권유하며 다음의 구절을 예로 들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데살로니가전서 3:7)


우리는 여러분을 알게 되어 위로를 받았습니다. (공동번역)
Consequently we have cheered, brethren, over you.


그는 위의 구절에서 “여러분 brethren”에서 교인들이 호격(vocative)으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대격(accusative, 직접 목적격)으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신앙과는 무관하므로 자유롭게 해석해도 좋다고 했다.
그리스인이 전적으로 호격으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만일 어떤 사람이 위의 구절을 “우리는 여러분을 알게 되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Consequently we have been of good cheer, brethren, over you”라고 번역했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해석한 것은 아니지만 적절하게 뜻을 나타낸 것이라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개념에 하나님이 세계의 창조주이며 지배자라는 개념을 융합시켰다.
신플라톤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악(malum)을 분석하고 정의한 후 악을 실재의 결여로 이해했으며 창조물을 합리적인 것과 불합리적인 것으로 구별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성경으로부터 죄악이란 사탄의 유혹에 대한 사람의 자발적인 굴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388-395년에 쓴 저서 『자유 의지론 De Libero Arbitrio』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영혼의 모든 기능을 다스리고 그것을 움직이며 활동하도록 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이다.


그는 믿음도 의지의 행위로 간주했다. 신플라톤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단순히 심미적으로만 경험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가 의지를 가리켜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라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체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의 구원론에서는 죄책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울에게서 발견되는 죄책감과 비교할 만하다.
그는 죄의식으로부터 경건함이 비롯된다고 믿었으며, 세례가 죄를 사면해 준다고 믿었고,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구주로 믿었다.
구원이란 하나님에 대한 화해이며 죄의식은 하나님을 유화시키고 만족하게 하는 행위였다.


결론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를 기억, 이해, 의지에 비유했으며 이 세 가지가 온전할 때 일체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성경에 대한 해석의 방법론을 제시해 성경에 대한 해석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특기할 만한 점은 가톨릭 교회의 절대권위를 주장한 데 있다.
그의 교회관은 413년부터 426년까지 13년 동안 걸려 쓴 『신의 도성 De civitate Dei』에 잘 나타나 있다.
최초의 역사 철학서로 알려진 이 저술은 모두 22권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의 나라와의 관계를 다루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원리를 가진 두 나라가 끊임없이 서로 접촉하는데 이 두 나라의 기원은 악한 천사의 타락에서 비롯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나라의 역사적 발전은 카인의 후예와 아벨의 후예로 구별되며 마침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과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 huius mundi)으로 대립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다고 보았다.


구원받은 사람을 그는 하나님의 도성을 순례하는 순례자라고 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며 외면적으로만 교회에 속한 교인과 진정한 의미로 교회에 속한 교인을 구별했다.
또한 교회를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부름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의 절대권위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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