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툴리아누스,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했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론의 문제가 부상될 것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말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중의 품성을 본다.
그것은 서로 혼합되지 않고 하나님이며 인간인 예수의 한 인격 안에 결합되어 있다.
당시 신학자들은 지나치게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 의존해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려고 했는데 이런 시도에 저항한 신학자들 가운데 테르툴리아누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과격한 말로써 저항했다.
학문과 교회 사이에 무슨 일치가 있을 수 있을까?
스토아적이고, 플라톤적이며, 변증법적 방법으로 연합된 잡종의 그리스도교를 만들려고 하는 모든 시도를 집어쳐라.
우리는 믿음에 있어 그 이상의 신념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했으며 그리스도교를 이성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신학자들을 비난했다.
저서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On the Flesh of Christ』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내가 그 사실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십자가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반드시 믿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불합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확실한 이유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며 처음으로 삼위일체를 주장했다.
전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신성이 있다는 그의 주장은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210년경 프락시아스(Praxeas)의 가르침에 대해 반박하는 가운데 그는 그리스도에게 인성 말고도 신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라는 신인동성론(神人同性論 anthropomorphism)을 제기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사람(anthropos)의 이미지(morphe)로 만든 것이다.
유대인과 초기 그리스도인은 플라톤의 영원한 정신적 영역(eternal)의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비물질의 순수현존이란 개념을 신성에 대한 정의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존재자(being)란 말을 접속하여 하나님을 영원한 존재자(eternal being)인 인격적인 정신적 영역으로 묘사했다.
그리스인에게 신은 인격자가 아니었지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정신세계의 영역을 차지하는 분으로 비물질의 순수현존자였다.
신학과 철학의 구별은 신성에 대한 인격화 때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하늘나라 kingdom of heaven”를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로 불러서 신성을 인격화했다.
그리고 유대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꺼려한 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인성이 있다는 주장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해와 빛 또는 샘과 강물의 관계로 묘사해 둘을 분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프락시아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한 사람으로 간주하면서도 그리스도는 예수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라고 해서 한 실체로 인식하기보다는 둘로 분리했다.
즉 예수의 육신과 영을 분리하면 육신으로서의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영으로서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란 말이 되는데 이는 결국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행위이므로 프락시아스의 일원론은 오히려 예수와 그리스도를 이원화한다고 비난받았다.
프락시아스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으로 묘사했는데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나님을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하며 이런 명칭들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속성에 속할 뿐이라고 역설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누가복음 1:35)
프락시아스는 위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태어난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테르툴리아누스는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육신에 내재한 영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
그는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성령이었음을 상기시키며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아기는 하나님의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라고 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3)
위의 구절은 예수의 육신이 하나님이란 뜻이 아니며 하나님이 예수의 육신 안에 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시편 87:5)
그러나 시온은 사람마다 어머니라 부르리라
모두 그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