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성령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왔지만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약성경 저자들이 일반적으로 율법에 예언서와 시편을 포함시켰음을 상기시키면서 특별한 경우에만 모세의 법에 한정해서 율법이란 말을 사용했음을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신약성경 저자들은 시편 저자들을 선지자 그룹에 포함시켰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그들을 그룹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우와 특별한 경우에 따라서 각기 다른 말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문제로 삼으려는 것은 성령만을 사랑이라고 부른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도 사랑임을 역설하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모두를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성령만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류임을 지적했다.
또한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구약성경 저자들이 특별히 지혜라고 부른 구절을 지적한 후 성령과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지혜이며 삼위는 일체로서 분리가 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는 바울이 예수를 지혜라고 부른 것과 요한이 성령을 사랑이라고 부른 것도 지적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신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for love is of God)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께로부터 났으며 신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신을 알지 못합니다
신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for God is love) (요한1서 4:7-8)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용한 구절에서 사랑이란 말이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하나님을 사랑(for love is of God)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 보고 사랑을 하나님의 하나님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으로 해석했다.
그리스도와 성령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왔지만 하나님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이 아니며 사랑과 하나님은 서로로부터 왔기 때문에 사랑이 그리스도와 성령 둘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 같이 우리를 사랑하였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1서 4:9-12)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은 사랑이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게 된다는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한1서 4:13)
하나님은 성령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 있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게 하는데 이것을 사랑의 결과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그는 성령 자체가 사랑인 하나님을 강조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1서 4:16)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까닭은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바울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로마인에게 다음과 같이 적어 보냈다고 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로마서 5:5)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보다 더욱 큰 하나님의 선물이란 있을 수 없다면서 사랑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성령을 통해 받는 것이 사랑 외에 더 있으나 사랑이 없다면 무가치하다고 했던 바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have not charity)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I am nothing)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아우구스티누스는 바울의 사랑 예찬을 영생의 길이라고 극찬하면서 love와 charity는 모두 사랑이란 뜻으로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천국으로 이끌며, 사랑이 없는 믿음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런 믿음은 유익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5:6)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어리석은)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 2:19-20)
결론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성령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줌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선물로도 불리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선물이란 특별한 사랑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나아가도록 만들기에 사랑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하나님의 은총인데 인성의 회복은 은총 또는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은총이란 상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은총은 구원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또한 은총은 세례로부터 시작되므로 세례는 은총을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를 맺게 하는 최초의 행위이다.
세례를 통해서 만이 아담으로부터 비롯한 원죄가 제거되기 때문에 유아도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은총의 역사를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위로 이해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새 삶의 과정에서 성령이 사람의 마음 안에 믿음을 만들어 주며 타락을 통해 사람을 지배했던 영적 무지를 몰아내 준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를 찬동하게 되며 차츰 영적인 일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