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아새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라틴 명으로 ‘칼라드리우스caladrius’라고 불리는 당아새는 로만 문화권에서 ‘칼란드라calandra,’ 곧 종달새와 같은 새로 혼동해서 쓰였다.
실제 당아새의 색깔과 달리 본문에서 검은 곳이라고는 한 곳도 없이 온통 하얀 새라고 설명된 것은 자연관찰보다는 그리스도의 속성을 빗대기 위해서 상징적 의미가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당아새에게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본 것은 플루타르코스( quaest. conv. V 7. 2)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엘리아누스( Aeth. 3. 8)나 플리니우스( N.H. 30. 94)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황달병에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병의 나쁜 기운을 들이마시고 다시 뱉아 내는 당아새의 성질은 오랜 전설에서 기원한다.
이 가운데 히포낙스( 48 D)의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플라톤( Gorgias 494 B)은 당아새가 공연히 삼켰다가 뱉아 내는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 어로 당아새를 의미하는 카라드리오스charadrios와 비슷한 카라드라charadra가 ‘틈새’나 ‘심연’을 의미하고, 당아새는 곧 ‘바위 틈에 보금자리를 틀고 사는 새’라는 뜻으로 생긴 말이었으니, ‘당아새는 삼키고 또 뱉아 내는 새’라는 말은 단어의 운을 의도적으로 뒤섞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1 신명기 14: 17
공동번역에서 “정한 새는 어떤 것이든지 먹을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새는 먹지 못한다.
…사다새, 흰독수리, 가마우지…등이다”라고 옮겼으나, 여기서 가마우지에 해당하는 ‘charadrios’는 ‘당아새’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로만어권 국가에서 나온 피지올로구스 판본에는 ‘charadrios’를 ‘calandra,’ 곧 ‘종달새’로 잘못 옮기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당아새는 피지올로구스에 서술된 것처럼 ‘온통 하얀’ 깃털의 새와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속성에 빗대기 위해서 당아새의 색을 의도적으로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다.

2 요한 I서 1: 5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그대들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3 요한 14: 30

4 베드로 I서 2: 22
그리스도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 말씀에도 아무런 거짓이 없었습니다.

5 마태오 8: 17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그분은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사야 53: 4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이사야 53: 11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

이사야 53: 12
이는 그가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은 때문이다.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어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때문이다.

6 시편 68:18
당신께서 포로들을 사로잡아 높은 곳에 오르시니
사람들이 조공을 바쳤고,
반역자들도 야훼 하느님 계신 곳에 찾아왔사옵니다.

에페소 4: 8 성서에도,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사로잡은 자들을 데리고 가셨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
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7 요한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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