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피지올로구스가 열거하는 코끼리의 특성들은 여러 고전 문헌과 성서의 기록, 그리고 자신의 관찰과 사색이 결합된 결과물로 보인다.
피지올로구스가 살았던 시기의 자연과학적 지식의 반영으로 보이는 여러 관찰들, 예컨대 암수의 코끼리 사이에 짝짓기의 욕구가 없이 순결하고 수줍음이 많으며, 물을 좋아하지만 헤엄에는 능하지 못하고, 아기 코끼리가 코를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 어미의 젖을 빠는 등의 고유한 성질이 본문의 줄거리에 녹아들었다.
그 밖에 ‘만드라고라’라는 자귀나무의 모티프는 성서 창세기 30 : 14 -15에서 빌려왔다.
코끼리가 천적인 뱀을 발로 밟아 죽이는 것도 창세기 3 : 15에서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의 내용을 유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서 플리니우스는 코끼리와 뱀이 천적 관계라는 사실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코끼리가 관절이 없는 통뼈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H.A. II 1 p. 498 a 8)와 아엘리아누스( 4. 31)가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아가타르키데스Agatharchides( Diodor. III 27)와 스트라본( XIV 4. 10)을 위시한 대부분의 고대 문헌에서는 통뼈 동물이라는 주장이 반복되었다.
넘어진 코끼리가 다른 코끼리의 도움으로 일어난다는 주장은 플리니우스( N.H. 8. 24)와 아엘리아누스(6. 61과 8. 15)에 근거하지만, 플루타르코스( de soll. anim. 25 p. 977 E)는 이를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케사르( 갈리아 전기 VI 27)는 엘크 순록에게도 그런 습성이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코끼리의 뼈나 털을 태운 재가 귀신을 쫓는 데 비상한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로부터 전해 오는 사슴의 뼈와 털의 효험이 잘못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추측컨대 코끼리를 뜻하는 ‘엘레파스elephas’와 사슴을 의미하는 ‘엘라포스elaphos’를 단순히 혼동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코끼리 이야기가 특히 비잔틴 시기에 이르러 내용과 줄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해진 것은 기독교적 구원사의 예시로 해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 창세기 30: 14-15
보리를 거둘 때가 되어 르우벤이 밭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하여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 드렸다.
라헬이 이것을 알고 레아에게 졸라 댔다.
“언니 아들이 캐어 온 자귀나무를 나도 좀 나누어 주구료.”
그러나 레아는 “네가 나에게서 남편을 빼앗고도 무엇이 부족해서 이제 내 아들이 캐 온 자귀나무마저 달라느냐?” 하며 역정을 내었다.
그러자 라헬은 “언니 아들이 캐 온 자귀나무를 주면 오늘 밤 그분을 언니 방에 드시도록 하리다” 하였다.
공동번역에서 ‘자귀나무’는 ‘만드라고라mandragora’를 옮긴 말이다.
‘소요마’로 옮길 수도 있다.
식물의 뿌리가 마치 사람의 모습을 방불케 하여 사랑이나 순산의 영약이라는 미신이 있었다고 하며, 루터는 이를 ‘ Liebesapfel’, 곧 ‘사랑의 사과’로 옮겼다.
2 창세기 4: 1
아담이 아내 하와와 한 자리에 들었더니 아내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외쳤다.
3 시편 69: 1
라틴 성경에는 시편 69: 2에 나와 있다.
4 마르코 10: 43-45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5 필립비 2: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