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기또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힐롯의 아들 바아나가 다아낙, 므기또, 욕므암 건너편 일대, 이즈르엘에서 내려다보이는 벳스안 전지역과 또 벳스안에서 사르단 곁에 있는 아벨므홀라에 이르기까지…. 【열왕기상 4:12】

솔로몬 왕은 야훼의 전과 자신이 살 궁전과 밀로 궁을 짓고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쌓고 하솔, 므기또, 게젤을 증축하기 위하여 강제노역을 시켰는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열왕기상 9:15】

팔레스타인 북쪽에 위치한 이즈르엘 평야는 불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자주 교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 평야를 지켜주던 도성은 므기또, 다아낙, 이즈르엘, 벳스안이었다.
솔로몬 왕(기원전 960∼928년)은 이스라엘인의 단결을 굳히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의 영토를 사방으로 확장하여 여러 요새와 위성도시를 건설했다.
므기또 성채도 이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므기또 요새로 올라갔다.
므기또 요새는 80여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180여 계단을 올라간다.
지하로부터 샘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이다.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요지인 므기또 요새는 역사적인 곳이다.
다윗 왕 때부터 전란으로 20여 차례 파괴되었고 20여 차례에 걸쳐 개축되었다.
므기또 정상에는 말 수백 필을 훈련시킬 수 있는 넓은 광장과 마굿간이 있으며,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우물이 있고, 식량을 비축할 수 있는 창고가 있다.

므기또 요새가 처음으로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은 기원전 3500년경이었다.
그 후 전쟁으로 파괴될 때마다 개축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스무 번째 개축했을 때에는 본래의 것보다 20m 가량 높아졌다.
결국 요새는 기원전 450년과 350년 사이에 파괴되고 말았다.
기록에 의하면 므기또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때부터였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그곳에서 발굴한 부싯돌은 그곳 사람들이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나아간 사실을 말해준다.

므기또 요새는 유럽으로부터 이집트로 가는 남북 해변도로가 통과하는 곳이며, 또한 이 해변도로와 동아시아 메소포타미아에서 뻗어 나온 도로가 교차되는 길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므기또 요새를 먼저 점거하는 것이 유리하며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셈이 된다.
솔로몬 왕 역시 므기또 요새를 점령한 후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솔로몬 왕은 므기또를 군사도시로 만들고 그곳에 제 5행정본부를 두었다.

솔로몬이 병거와 말을 사 모으다보니 병거가 천사백 대, 군마는 만 이천 마리가 되었다.
그는 이 병력의 일부는 병거주둔성에 배치하고 일부는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 배치하였다. 【열왕기상 10:26】

므기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하므로 솔로몬 왕은 사방에서 모여드는 카라반들로부터 관세를 거두어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기원전 9세기에 북이스라엘의 왕 오므리와 아들 아합은 므기또 도성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곡식 창고, 거대한 마굿간, 놀랄 만한 상수도 시설이다.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2세(재위 기원전 884∼859년)는 시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왕국을 위협했다.
기원전 845년 예언자 엘리사는 바알 신을 섬기던 아합 가문을 무너뜨리도록 예후를 왕으로 내세웠다(열왕기하 9:1-13).
예후는 이즈르엘로 병거를 이끌고 쳐들어갔다.
거기에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 요람이 시리아군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해 앓아누워 있었으며, 유다의 왕 아하지야(요람 왕의 사촌)가 문병 중이었다.
예후는 이즈르엘 도성을 점령하여 요람 왕을 살해했고, 이즈르엘 도성을 빠져나가 벳하깐으로 도망친 아하지야 왕은 이블르암 근처의 고갯길에서 예후의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고서 므기또까지 도망쳤지만 거기서 사망했다(열왕기하 9:14-27).

므기또는 기원전 732년에 아시리아의 왕 디글랏빌레셋 3세에 의해서 불바다가 되었으며, 9년 후에는 아시리아의 왕 살마네셀 5세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열왕기하 17장).
유다 왕 요시야가 일부 재건했지만 기원전 609년에 이집트 왕 느고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페르시아 제국(기원전 538∼332년) 때에 므기또는 잊혀진 도성으로 땅속에 묻혀버렸다.
이천여 년 동안 잊혀졌던 성채가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03년 독일의 고고학자 G. 슈마커에 의해서였다.
미국의 고고학자들도 1926년부터 1939년까지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했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야딘은 1960년부터 1972년까지 발굴한 후 조그만 박물관을 건립하고 그곳에 유물들을 소장했다.

므기또를 히브리어로 “하르마게돈(아마겟돈)”이라고 부르는데 요한은 말세에 최후의 전쟁이 이곳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세 악령은 히브리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요한 묵시록 16:16】

우리들은 가이사리아로 가는 길에 사론 평야를 지나게 되었다.
솔로몬의 다음과 같은 노래가 떠오른다.

(여자)
나는 고작 사론에 핀 수선화,
산골짜기에 핀 나리꽃이랍니다.
(남자)
아가씨들 가운데서
그대, 내 사랑은
가시덤불 속에 핀 나리꽃이라오. 【아가 2:1-2】

사론 평야에는 비가 자주 내리므로 들판은 초목과 꽃이 만발하여 아름답다.
북쪽 갈멜 산으로부터 지중해 해변을 끼고 남쪽 요빠에까지 이르는 사론 평야를 남북 해변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땅이 비옥하고 장미가 아름답기로 구약시대 때부터 익히 알려진 곳이다.
야산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으며, 봄에는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들을 뒤덮어 온통 꽃동산으로 변한다.
그 지역 사람들은 소떼를 평야에 풀어놓고 먹였으며, 꿀맛 나는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과수원도 많았다.
주홍색의 야생 양귀비와 아네모네 꽃이 여기저기를 수놓고 있는 평야를 지나면서 우리는 찬송가를 불렀다.

사론의 꽃 예수 나의 맘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사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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