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리아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가이사리아는 요빠 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항구도시로 적당한 곳이 아니었지만 헤로데 대왕은 로마 시를 모방하여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만든 후 낙성식을 거창하게 했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Julius Caesar, 재위 기원전 29∼서기 14년)는 헤로데 대왕에게 가이사리아 지역을 하사했고 건축광이었던 헤로데 대왕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의 항구를 건설했다.
그는 600m와 300m 길이의 거대한 방파제를 두 개 만들었는데, 파도가 심한 그곳에 그렇게 커다란 방파제를 만든 것으로 보아 건축에 관한 지식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막대한 돈과 인력을 동원한 10년에 걸친 공사가 끝난 것은 기원전 10∼9년이었다.
그곳을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리아’라고 불렀다.

가이사리아에는 시장터 아고라(Agora), 경기장, 야외 원형극장, 로마식 공동목욕탕 등이 있어 당시 어느 문명의 도시들에 뒤지지 않았다.
가이사리아가 완공되자 로마 제국은 총독으로 하여금 그곳에 거주하게 하여 유다의 수도로 삼았다.
총독관저와 행정본부가 들어선 가이사리아는 유다의 정치중심지가 되었다.

성벽은 이중으로 쌓고 성벽과 성벽 사이에는 호수를 만들었는데 일본 궁성이나 대판성처럼 생겼다.
가이사리아는 1201년 십자군 전쟁(1099∼1291년) 중 해로를 통해 유럽에서 진입한 십자군을 맞이하는 관문이 되었다.
십자군은 가이사리아에 거대한 규모의 요새를 건설했는데 그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난 1291년 요새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가이사리아는 약 600년 동안이나 모래더미에 파묻혀 있다가 금세기에 와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지중해 해변에 건립한 야외 원형극장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모방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매년 여름철이면 국제적인 규모의 ‘이스라엘 음악제’가 열린다.
많은 세계의 정상급 연주자들과 지휘자들이 그곳에서 연주를 했다.

놀라운 일은 요르단 강물을 끌어오기 위해서 50km 길이로 성벽을 쌓고 성벽 위에 수로를 만든 것이다.
가이사리아에는 마실 물을 공급하는 샘이 전혀 없었으므로 12km 떨어진 갈메 산맥의 샘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수로의 일부가 남아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가이사리아가 성지인 이유는 다름 아닌 베드로가 로마 제국의 장교 고넬료와 그의 친지들에게 세례를 베푼 곳이기 때문이다.
고넬료는 가이사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군인 100명을 지휘하는 장교였는데 부하들을 시켜서 베드로를 가이사리아로 모시도록 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로부터 직접 예수님에 관해 듣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는 친지와 친구들을 초대하여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경청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로 결심한 그들에게 베드로는 세례를 베풀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교인으로 만들었다.

한편 가이사리아는 사도 바울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울로는 세 번째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이사리아에 들렀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고난을 당할 것이라며 가지 말 것을 권유했다.
바울로는 그들에게 “주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나는 감옥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죽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는 체포되었고, 가이사리아로 호송되어 2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로마 시민이었던 바울로는 로마 황제에게 상소했으며 배에 태워져 로마로 호송되었다.
바울로는 로마에서 사형당했으므로 가이사리아는 그가 머물렀던 마지막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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