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야포, 요빠)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텔아비브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도시로 경제, 사회, 문화적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40만 명인데 주변 신시가지의 인구까지 합하면 이스라엘 인구의 3분의 1이 이곳에서 거주하는 셈이다.
1967년에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기 전에는 텔아비브가 1948년부터 1967년까지 수도였다.
텔아비브라 불리기 전에는 야포로 불린 이곳을 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라고 자랑한다.

전하는 말로는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창세기 6:10, 9:18)이 이곳에 항구도시를 세웠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도시를 야포로 불렀다고 한다.
로마의 문필가 플리니우스(23∼79년)는 노아의 홍수(창세기 6:13-8:13)가 있은 지 40년 후에 항구도시가 세워진 것이라고 연대까지 기록했다.
고고학자들은 야포에서 신석기(기원전 5000년대)와 청동기(기원전 4000∼3100년)의 유적을 발굴했으며, 힉소스 민족(기원전 1750∼1550년)이 도시를 이루고 살았던 흔적을 찾아냈다.
기원전 1468년경 이집트의 왕 투트모시스 3세에게 점령된 야포는 기원전 12세기까지는 이집트에 속했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 하느님의 집,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서 레바논에서 벌목한 목재를 야포 항구를 통해서 운반했다.
역대기하에 그 과정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은 띠로 왕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청을 넣었다.
“당신은 본인의 선친께서 궁을 지으실 때 송백재목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본인은 본인의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모실 집을 지어 바치려고 합니다.
거기에서 분향제를 올리고 거르지 않고 젯상을 차려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번제물을 바치고자 합니다.
또 안식일과 매달 초하루와 우리 하느님 야훼께서 정해주신 절기마다 번제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어떤 신보다도 크신 분이시라 본인이 지어 바칠 집도 커야 합니다.
저 하늘, 저 꼭대기 하늘도 좁아서 못 계실 분에게 무슨 수로 집을 지어드리겠습니까?
본인이 무엇인데 어찌 감히 그분께 집을 지어드리겠습니까?
다만 향이나 피워 올리려는 뜻밖에 없습니다.
이제 본인은 당신에게 금은과 놋쇠와 쇠를 다룰 줄 알며, 붉은 비단, 진홍비단, 자주비단을 짤 줄 알며 조각도 할 줄 아는 기사 한 사람을 청합니다.
다윗 선왕께서 길러주신 기술자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할 기사를 보내주십시오.
또 레바논의 송백과 전나무와 오동나무를 청합니다.
레바논에서 나무를 벨 줄 아는 일꾼들이 당신에게 있는 줄 압니다마는 본인도 일꾼을 보내어 같이 일하게 하겠습니다.
본인은 놀랄 만큼 큰 집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재목을 많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채벌 기술자들에게 본인은 양곡을 대어주겠습니다.
밀 이만 섬, 보리 이만 섬, 포도주 이만 말, 기름 이만 말을 당신의 일꾼들에게 대어주겠습니다.”

띠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회신하였다.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왕으로 세워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
이제 본인은 기술자 후람 선생을 보냅니다.
그는 내가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금은과 놋쇠와 쇠와 보석과 나무를 다룰 줄 알며, 붉은 비단과 자주비단과 모시와 진홍색 비단을 짤 줄 알며, 조각을 할 줄도 압니다.
갖가지 고안을 다 해내는 사람이니, 무엇이든지 부탁하십시오. …
우리는 당신에게 필요한 만큼 레바논에서 벌목을 하여 뗏목으로 엮어 요빠 앞바다까지 운반해가겠습니다.
예루살렘까지 올려가는 일은 당신이 담당하십시오.” 【역대기하 2:3-16】

야포는 예언자 요나에 얽힌 사연도 가지고 있다.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그곳 주민들을 회개시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요나는 하느님의 눈을 벗어날 속셈으로 야포 항구로 발길을 돌렸다.
요나는 지금의 스페인 남단의 항구 다르싯으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치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뱃사람들은 풍랑이 하느님의 분노로 인해 일어난 것을 알고 요나를 바다로 던졌다.
그러자 바다는 잔잔해졌고, 큰 물고기에게 삼켜진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요나 1-2장).

기원전 8세기에 야포는 또다시 이집트에게 점령당했으며, 기원전 702년에는 아시리아 사람들이, 기원전 6세기에는 불레셋족이 야포를 점령했다.
바빌론에서 50여 년 동안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레바논으로부터 송백나무를 벌목하여 뗏목으로 야포 항구로 운반했다(에스라기 3:1-7).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후로 야포는 헬레니즘 문명권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는 박해가 시작되어 유대인들은 더 이상 야포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시리아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해 와서 유대인들을 바다에 던져 죽게 했던 것이다.
이에 보복하려고 기원전 163년 유다 마카베오는 야포의 부두에 불을 질렀고, 그러자 시리아는 야포 사람들을 마구 잡아 앙갚음을 했다(유대교 성서 마카베오 후서 12:3-7).
유다 마카베오의 형제들, 요나단과 시몬은 결국 야포를 점령했으며, 기원전 142년 시몬은 유대인들이 야포에서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했으므로 야포는 다시 유대인들의 도시가 되었다.

기원전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야포를 로마의 영토로 만든 후 이스라엘 출신의 대사제들로 하여금 이곳을 통치하게 했다.
헤로데 대왕이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가이사리아에 로마식 항구도시를 건설하자 그때부터 야포는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서기 6년부터 야포는 ‘플라비아 요빠(Flavia Joppa)’라는 지명으로 로마 제국의 유다 총독관구에 속하게 되었다.
636년부터 야포는 아랍인의 도시로 변모했으며, 아랍인들이 라므라에 수도를 세우고부터는 다시 항구도시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십자군 시대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의 도시였고, 1268년 이슬람교도들이 야포를 점령한 후에는 다시 아랍인들의 도시가 되는 수난을 겪었다.

19세기 말엽부터 유대인들이 야포의 인근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1910년에는 인근에 흩어진 여러 마을들을 합해서 텔아비브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형성했다.
텔아비브는 ‘봄의 언덕’이란 뜻으로 이스라엘인들이 포로생활을 했던 바빌론의 그발 강가 텔아비브(에스겔서 3:15)와, 무덤에 묻힌 이스라엘 사람들의 부활에 관한 예언자 에스겔의 환상(에스겔서 37:1-14)을 상기시켜준다고 한다.
1948년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를 선언하면서 텔아비브를 이스라엘의 임시수도로 정했다.

우리가 순례할 성지들이 있는 팔레스타인은 옛날부터 무역상들이 서유럽과 실크 로드(Silk Road)를 통하여 중국, 인도로 가는 길목이자 동아시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로 가는 카라반(隊商)들의 길목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헤르몬 산이 철새들이 쉬어가는 새들의 길목이라는 것이다.
약 250종의 철새들이 이곳을 거쳐 남북으로 오고 간다.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지이자, 카라반들에 의한 동서양의 교역이 활발했던 중간지역이며, 철새들에게는 쉬어가는 길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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