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고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예리고에서 맞은 토요일은 안식일이었다.
도시가 죽은 듯이 고요했다. 호텔 종업원들이 근무하지 않으므로 아랍인들이 대신 일을 했으며 이곳에 있는 한인교회 교인들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호텔 로비에서 예배를 드린 후 광야를 지나 예리고로 내려갔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우리가 탄 차는 요르단 강을 향해 경사진 길을 달려갔다.
차창 밖에는 황량한 광야가 펼쳐져 있고 그 광야 가운데 예리고가 있다.
광야는 예수님 생존 당시 사두개파와 바리사이파에 밀려난 비주류 유대교 지도자들이 활약하던 곳이다.
에세네파, 쿰란, 세례자 요한도 그곳에서 활약했으며,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은 것도 광야에서였다.
들에는 양치는 목자 베두인족이 보이고 그들이 기거하는 천막들이 이따금 눈에 띈다.
베두인족은 옛날 관습대로 광야를 유랑하는 유목민들이다.
계곡에는 헤로데 왕이 별궁으로 물을 끌어가기 위해서 설치한 22km나 되는 수로가 보인다.
일 년 내내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땅이며, 주위에는 바위로 된 야산이 있다.
풀도 나무도 자랄 수 없지만 바위틈으로 연한 풀이 자란다.
목자는 그러한 곳으로 양들을 몰아서 풀을 먹게 한다.
아카시아의 일종인 시팀 나무(Shittim tree)가 이따금 눈에 띄는데 베두인족은 그 나무 아래서 햇빛을 피해 휴식을 취한다.
모세는 시팀 나무로 법궤를 만들었다고 한다.
예리고로 가는 길가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이 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루가의 복음서 10:30-36】
해발 760m의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사막을 내려가다가 요르단 강 못 미쳐 조금 북상하면 해저 258m의 오아시스 도시 예리고에 이른다.
해저 258m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도시이다.
그곳에는 신기할 정도로 열대식물이 우거져 있는데 키가 10m가 넘는 종려나무들이 쑥쑥 자란다.
그곳을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것은 1분에 약 4,500리터의 맑은 물이 솟는 ‘술탄 샘(엔에스 술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샘을 사람들은 ‘엘리사의 샘’이라고 불렀는데 예언자 엘리사가 수질을 좋게 만들었다는 전설을 믿고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예리고는 직경 5km의 푸른 초원으로 대추, 무화과, 바나나, 포도, 감귤, 오렌지 등을 생산하는데 그야말로 꿀맛이다.
예리고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0년경 중석기시대였고, 기원전 7000년경 신석기시대 초에는 원시적인 도시를 형성했다.
예리고 성터에서 발굴된 유물은 기원전 7000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당시 예리고의 인구를 2,500∼3,000명으로 어림한다.
그렇다면 예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임에 틀림없다.
기원전 6000∼5000년경 외부에서 유민이 이곳으로 와서 정착했다.
그 후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풍습이 달라졌는데 기원전 7000년경에는 시신을 집 안에 묻었지만, 6,000∼5,000년경에는 해골에다 진흙이나 석고를 바른 후 물감을 칠했으며 눈에는 조개껍질을 박아 마치 산 사람의 모습으로 보존했다.
술탄 언덕에서 발굴된 이런 해골이 예루살렘 록펠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원전 1800년부터 1550년 사이에 힉소스(Hyksos) 민족이 북쪽에서 내려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예리고에 큰 규모로 성곽을 쌓아 예리고를 대도시로 만들었다.
성곽의 유적이 술탄 언덕 북쪽 끝에 보존되어 있다.
힉소스 민족은 성곽을 세 겹으로 쌓았는데 맨 바깥에는 돌로 약 3.5m 높이의 외벽을 쌓고, 중간에는 외벽 상단에서부터 흙으로 경사 35도의 비탈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20.75m이다.
안쪽에는 석회로 폭 5m의 내벽을 쌓았는데 높이는 알 수 없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규모였을 것이다.
힉소스 민족의 장례풍습은 독특하여 그들은 시신과 함께 식량, 가구, 화장품 따위 부장품들을 많이 묻었다.
당시 힉소스 가족묘지에서 발굴한 유품들을 록펠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기원전 1550년 이집트인들이 힉소스 민족을 쫓아내고 여세를 몰아 팔레스타인까지 점령하면서 예리고의 성곽을 부수어버렸다.
예리고 주민들은 다시 성곽을 쌓았지만, 기원전 1230년경 여호수아가 성벽을 무너뜨리고 예리고를 점령했다.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60만 명의 이스라엘인들은 생존하기 어려운 시나이 반도에서 무려 40년 동안 유랑하다가 마침내 요르단 강 동쪽지역에 도달했다.
모압 평지라고 불리는 그 지역은 오늘날 요르단에 속한다.
모세와 이집트를 탈출한 사람들은 예리고를 눈앞에 두고 죽고, 다음 세대의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2세들을 이끌고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고를 함락했다.
예리고는 ‘향기의 도시’, ‘달의 고을’, ‘종려나무의 성’이란 뜻이다.
아열대에 속하는 예리고는 연중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는 대단히 더운 곳이다.
사해 북쪽 9.6km 지점에 있는 광야의 오아시스 예리고에 헤로데 대왕은 별궁을 지었으며, 그 별궁에서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예리고를 통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리고로 들어가는 입구에 돌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것을 ‘자캐오의 나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리워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주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자캐오를 보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19:1-10】
자캐오가 올라갔다는 나무가 현존하는 돌무화과 나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이런 종류의 나무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날 구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