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는 사해로 ‘내려갔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해가 지중해보다 약 450m나 낮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해는 연중 기온변화가 별로 없이 고온이 계속되는 곳이다.
낮 기온은 섭씨 40도가 보통이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이다.
갈릴래아 호수로부터 요르단 강을 타고 물이 그곳으로 흘러들지만 다른 곳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다.
요르단 강으로부터 매일 500만 톤 가량의 물이 들어오는데도 사해의 수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유는 높은 기온으로 인해 계속 물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사해의 길이는 무려 75km이고 동서의 폭은 긴 곳이 18km이며, 둘레는 200km에 이르고 넓이는 950km2이다.
사해의 염도는 보통 바다에 비해서 7∼8배나 높기 때문에 요르단 강물을 따라 내려온 물고기들은 사해에 이르면 죽고 만다.
사해 남쪽의 염도는 더욱 높아 소금결정이 목화송이처럼 수면 위에 떠있다.
소금이 바다를 덮은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
근래에 갈릴래아 호수 물과 요르단 강물을 농지로 끌어대기 때문에 사해로 들어오는 수량이 줄고 있으며, 사해의 물이 점차 말라감에 따라 사해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어 생태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물이 마른 벌판에 소금기둥이 군데군데 서있는 것이 눈에 띈다.
우리는 온천으로 갔는데 사해의 물을 끓여서 사용하고 있는 온천물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한다.
욕조에 들어가니 염분이 많아서 몸이 둥둥 뜬다.
사해의 물은 뿌옇고 비눗물처럼 미끈거린다.
그 물을 그릇에 담아 수분을 증발시키면 그릇에 남는 잔류물이 물의 4분의 1이나 된다고 한다.
잔류물은 소금뿐 아니라 각종 광물질, 즉 칼슘, 포타시움, 마그네슘, 유황, 브로마인 등이다.
‘브로마인(Bromine)’의 경우 전세계 소비량의 26%를 사해에서 공급한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향후 일천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브로마인이 사해에 녹아 있다고 한다.
사해는 그러니까 죽은 바다가 아니라 보물창고인 셈이다.
사해의 바닥 층은 대단히 고운 검정색 진흙인데 몸에 바른 후 물로 씻으면 피부에 특효라고 해서 우리는 진흙을 몸에 발랐더니 모두 흑인처럼 보였다.
사해 지역의 공기는 다른 지역에 비해 산소가 10% 더 많아 호흡기에도 좋다.
우리들은 사해 서안의 절벽에 위치한 엔게디(Engedi)로 갔다.
엔게디는 ‘염소 새끼 우물’이란 뜻이다.
그곳은 샘물이 폭포수같이 솟아나는 오아시스로 그 물을 관개하여 집단농장(키부츠)에서 사용한다.
절벽 여기저기에 있는 동굴은 한때 다윗이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을 피했던 곳이다.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엔게디 근방의 험준한 곳에 올라가 머물렀다.
사울은 불레셋 군을 쫓아낸 다음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이스라엘에서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 일당을 찾아 들염소 바위 동편으로 갔다. 【사무엘상 24: 1-3】
사울 왕이 뒤를 보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다윗은 그를 죽일 수 있었지만 사울 왕이 양심에 가책을 느끼도록 사울 왕의 겉옷자락만 잘라냈다.
사울 왕이 밖으로 나오자 다윗은 뒤따라 나와서 사울 왕에게 절을 한 후 이렇게 항의했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왕을 해치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보십시오.
오늘 야훼께서는 분명히 동굴에 들어오신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성별해 세우신 저의 상전을 어떻게 감히 손을 대랴 하며 임금님을 아끼는 마음에서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임금님의 겉옷자락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겉옷자락만 자르고 임금님께 칼은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임금님을 해치거나 반역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주셔야 하겠습니다.
내가 임금님께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임금님께서는 나를 잡아 죽이려고 쫓아다니시니 어찌 된 일이십니까?” 【사무엘상 24:10-12】
엔게디 남쪽에는 사람이 오르기 어려운 가파른 동굴이 여럿 있는데 그 동굴들을 쿰란(Qumran) 동굴이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한 곳에서 1947년 <사해사본 Deadsea Scrolls>이 발견되었다.
양을 치던 베두인족 소년 목동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목동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동굴까지 왔다가 동굴에 양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동굴을 향해 돌을 던졌다.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동굴 안으로 들어간 목동은 뜻밖에도 깨진 항아리에 들어 있던 <사해사본>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소년은 그것을 베들레헴으로 가지고 가서 아랍 상인에게 헐값에 팔았다.
그해 11월 23일 아침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고고학 교수 수케닉(Sukenik)은 구예루살렘에 사는 아랍 골동품 상인으로부터 급히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아랍 상인은 사해 부근 동굴에서 베두인족 소년이 세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전이었으므로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적대감이 많을 때였다.
이스라엘 지하군대 총사령관 야딘(Yadin) 장군이 수케닉 교수의 아들이었는데 야딘 또한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아버지가 아랍 상인을 만나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수케닉 교수는 다음날 새벽 베들레헴으로 가서 세 개의 두루마리를 사는 데 성공했다.
고고학계와 기독교계를 놀라게 한 <사해사본>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20세기 성서고고학계의 최대의 성과였다.
수케닉 교수가 그것들을 손에 넣은 지 꼭 두 달 후 그는 다시 전화를 받았는데 이번엔 네 개의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전화였다.
수케닉 교수는 그를 만나 그것들이 <사해사본>임을 확인했지만 어떤 연유인지 그 사람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리고 1953년에 수케닉 교수는 타계했다.
네 개의 <사해사본>을 갖고 있던 사람은 시리아 정교회의 사무엘 대주교였다.
그는 그것들의 값어치를 알아보고자 수케닉 교수를 속이고 상인을 내세워 감정을 받았던 것이다.
사무엘 대주교는 비싼 값에 팔려고 그것들을 미국으로 가지고 갔지만 그가 수백만 달러를 요구하는 바람에 1954년까지는 매매되지 못했다.
군사령관 직을 은퇴한 야딘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고학자가 되었다.
1954년 학술강연 차 미국을 방문한 그는 네 개의 <사해사본>이 아직 매매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딘은 극비리에 이스라엘 정부에 연락을 했고, 정부의 보증을 받아 흥정 끝에 그것들을 25만 달러에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야딘은 1967년에는 여덟 번째의 <사해사본>도 구입하였다.
우리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해사본 박물관 ‘책의 전당(Shrine of the Book)’에서 수케닉과 야딘 부자가 노력하여 구입한 여덟 개의 <사해사본>을 직접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