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쿰란 동굴을 지나 왼쪽에 사해를 끼고 남쪽으로 약 30km를 내려오면 엔게디 오아시스가 있다.
그곳에서 약 20km를 더 가면 오른쪽에 우뚝 서있는 언덕을 발견하게 되는데, 타원형 원통을 중간에 잘라놓은 듯한 모양의 그 언덕이 바로 마사다(Massada)이다.
거의 절벽에 가까운 언덕의 높이는 사해 해수면에서 410m이다.
산머리는 길이 약 600m에 중앙의 폭이 약 320m이다. 천연요새인 것이다.

일찍이 알렉산데르 얀네우스 왕(기원전 103∼76년)이 동쪽 국경을 방어할 목적으로 이 천연요새에 진지를 구축했다.
헤로데 대왕(재위 기원전 37∼4년)은 기원전 43년 아버지 안티파터가 암살되고 나서부터 37년 로마 황제에 의해 유다의 왕으로 임명될 때까지 마사다를 자신과 가족의 피난처로 이용했다.
그는 왕으로 즉위한 후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서쪽에 커다란 궁전을 지었으며 북쪽 절벽에는 작은 궁전을 지었다.
두 궁전 사이에는 화려한 욕탕, 유사시에 사용할 무기와 양식을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창고들, 유다 회당, 서고 등을 건축했다.
그는 요새를 성벽으로 에워쌌는데 그 길이가 1,300m에 이른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66년에 로마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전쟁은 5년 동안 계속되었다.
로마 군대는 68년 6월경에 예리고와 쿰란을 진압했고, 70년 8월에는 티투스(Titus)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전쟁으로 사망한 유다인의 수는 11만 명에 이르렀으며 포로로 잡힌 사람은 9만 명에 달했다.
헤로데 대왕이 건립한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은 그때 전부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960명가량의 유다인들은 마사다 요새로 이동하였다.
초창기에 유대인들을 지휘한 사람은 메나헴 벤 유다였고, 차기 지휘자는 시몬 바르 기오라였으며, 마지막 지휘자는 엘레야자르 벤 야이르(Eleazar ben Yair)였다.
벤 야이르의 지휘하에 유다인들은 마사다에 진을 치고 힘에 겨운 전쟁을 계속하려고 했다.
로마의 티투스는 73년 말(또는 74년 초)에 실바(Silva) 장군으로 하여금 제10여단을 이끌고 가서 마사다 요새를 포위하도록 했고, 흙으로 서쪽 구렁을 메우고 마사다의 외벽과 그 안쪽에 급조된 내벽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로마 군인들은 성문에 불을 지른 후 성벽을 무너뜨렸으며 날이 저물자 휴식을 취하고 이튿날 성 안으로 돌진할 계획을 세웠다.
다음날 새벽 로마 군대가 공격을 개시했을 때 놀랍게도 요새로부터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교육받은 1세기의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유다 전쟁》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로마 군대가 마사다 성벽을 부수기 시작한 날 밤, 유다인 지휘자 벤 야이르는 960여 명의 동지를 모아놓고 마지막 연설을 했다.
비굴한 항복이냐, 로마인의 칼에 죽을 것이냐.
벤 야이르는 제 3의 선택을 동지들에게 제시했다.
자유인으로서 죽음을 택하는 것이었다.

먼저 그들은 모든 소유물을 한곳에 모은 후 불에 태웠다.
남자들로 하여금 가족 중 여자와 어린아이의 목숨을 끊도록 했다.
남자들만 남았다.
그들은 열 사람을 뽑아서 나머지 남자들을 죽이도록 했다.
뽑히지 못한 남자들은 이미 죽은 부인과 아이들을 끌어안고 목을 내밀었다.
열 사람만 남게 되자 그들은 다시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을 골랐다.
마지막 한 사람이 아홉 명을 죽인 뒤 칼에 엎드려 자살했다.

요세푸스는 이어서 생존자의 증언을 기록함으로써 사실성을 더했다.

로마 군대는 마사다를 함락했을 때 동굴 속에 숨어 있던 두 명의 여자와 다섯 명의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죽음을 피해서 살아남은 마사다 최후의 증인들이었다.

노파 한 명, 엘레아자르의 친척 부인 한 명, 어린이 다섯 명이 생존자였다.
요세푸스는 그날을 산티코스 달 15일이라고 명기했는데 환산하면 74년 해방절이다.
1960년대 중반 야딘의 지휘로 마사다에서 대규모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야딘은 발굴 작업에서 성과를 올렸는데 헤로데 대왕의 궁전뿐 아니라 그곳에서 최후를 마친 유대인들의 유물을 찾아냈다.
그들이 신던 가죽신, 물건을 담았던 바구니, 열네 개의 두루마리 성경책 등이 발굴된 것이다.
야딘은 식량창고도 발견했는데 항아리에는 곡식이 남아 있는 상태여서 그들이 굶어죽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어로 ‘십일조’라고 표시된 항아리도 있었다.

야딘은 히브리 이름이 적힌 열한 개의 토기조각도 발굴했는데 벤 야이르의 이름이 적힌 토기도 있었다.
야딘은 열한 개의 토기조각이 최후의 날 제비뽑기를 할 때 사용되었던 것이라고 짐작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의 신빙성을 토기조각들이 증명해준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군인들은 훈련 마지막 날 마사다에 오른다.
사관에 임명되는 군인들 역시 마사다에서 서약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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