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수난의 도시: 예루살렘
예루샬라임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예루샬라임’이라고 하는데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근원지’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에는 청동기 시대(기원전 4000년)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기원전 2500년대에는 셈족계의 아모리족이 와서 정착했으며, 기원전 2200년대에는 가나안족이 이주해왔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네 족보를 캐어보면 너는 가나안 출신이라, 네 아비는 아모리인이요 어미는 헷 여인이다.” 【에제키엘 16:3】
당시에는 예루살렘을 여부스라고 불렀다.
전설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원래 ‘살렘’이었다.
아브라함 시대에 멜기세덱이 살렘을 통치했다고 창세기에 나와 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을 맺은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오는데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사웨 골짜기까지 나와 그를 맞았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였다. 【창세기 14:17-18】
아브람(아브라함)이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치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해주었는데 그곳이 예루살렘이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를 드리려던 모리아 산은 현재 예루살렘 성전 중심에 있는 바위로 된 제단이다.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거기(모리아 산)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놓은 다음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야훼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숫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브라함은 곧 가서 그 숫양을 잡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야훼 이레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야훼께서 이 산에서 마련해주신다”고들 한다. 【창세기 22:9-14】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정착하게 된 기록은 다음과 같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 가운데 확률이 열의 하나인 제비에 뽑힌 사람들이 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다.
나머지 아홉은 지방 성읍들에서 살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런 사람은 모두 칭찬을 받았다. 【느헤미야 11:1-2】
오늘날 예루살렘의 인구는 42만 명가량 되는데 30만 명이 유대인이고, 10만 명이 이슬람교도이며, 나머지 2만 명 정도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대부분 동방 정교회 소속이다.
예루살렘은 지중해 연안에서 52km쯤 떨어진 해발 720∼750m의 고지에 위치하며, 기혼 샘을 제외하고는 샘물이라곤 없는 아주 메마른 땅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 힌놈(또는 게헨나) 계곡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키드론 계곡이 있다.
계곡들 사이에 티로포에온이라는 계곡이 있었는데 지금은 메워져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힌놈 계곡과 티로포에온 계곡 사이에는 시온 산과 갈바리아가, 티로포에온 계곡과 키드론 계곡 사이에는 오벨 산과 모리아 산이 자리한다.
그리고 키드론 계곡 동쪽으로는 올리브 산과 스코푸스 산이 위치하고 있다.
솔로몬 왕(재위 기원전 960∼926년) 시대에는 도시의 중심지가 오벨 산보다 좀더 북쪽인 모리아 산언덕으로 옮겨지고 계약의 궤를 모실 성전과 화려한 궁전, 그리고 튼튼한 성벽이 세워졌다(열왕기상 5-8장).
밀실은 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꾸며놓았는데 거기에 그는 야훼의 계약궤를 모셨다.
그 밀실은 길이 이십 척, 나비 이십 척, 높이 이십 척인데 순금으로 입혔다.
또 송백나무 제단도 만들었다. 솔로몬은 전의 안쪽을 순금으로 입혔고 밀실 앞쪽에는 사슬을 늘여놓았는데 그것도 금을 입힌 것이었다.
그는 전 전체를 금으로 입혔다. 밀실에 있는 제단도 금을 입혔다. 【열왕기상 6:19-22】
성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만군의 야훼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좋으신가!
야훼의 성전 뜰 안을 그리워하여
내 영혼이 애타다가 지치옵니다.
나의 마음 나의 이 몸이
살아계신 하느님께 기쁜 소리 지르옵니다. 【시편 84:1-2】
솔로몬 왕이 사망한 후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갈라졌다(열왕기상 12장).
북왕국(이스라엘 왕국)은 세겜을 수도로 하여 여로보암(재위 기원전 926∼910년)이, 남왕국(유다 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여 르호보암(재위 기원전 926∼910년)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구약성서에 법궤에 대한 기록이 끊어졌는데 이집트 왕 시삭이 기원전 926년에 전리품으로 가져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르호보암 왕 제오 년에 이집트의 시삭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야훼의 전과 왕궁의 모든 보물을 샅샅이 뒤져 모두 가져갔다.
그는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를 포함하여 모든 값진 것을 가져갔다. 【열왕기상 14:25-26】
그래서 스룹바벨이 건립한 두 번째 성전과 헤로데 대왕이 건립한 세 번째 성전에는 법궤가 없다.
남왕국(유다 왕국)의 왕 히즈키야(재위 기원전 717∼698년)는 아시리아인들(산헤립 왕)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도시 성벽을 튼튼하게 보수했으며, 기혼 샘으로부터 실로암 못까지 길이가 거의 520m나 되는 거창한 수로를 만들었다.
그러나 므나쎄 왕(재위 기원전 697∼642년) 때에 유다는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고,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재위 기원전 605∼562년)가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정렴했을 때는 성전과 성벽이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2차 바빌론 유수, 열왕기하 25장).
포로생활 50년 만에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유다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538∼515년에 성전과 성벽을 보수했다.
잠깐 동안의 평화스러운 시기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침공하여 팔레스타인 전 지역이 헬레니즘과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기원전 323∼203년)에 포함됨으로써 끝이 났다.
기원전 168년에는 악명 높은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재위 기원전 175∼164년)에 의해서 예루살렘 시가가 파괴되고 성전은 잡신들의 소굴로 변하고 말았다.
하스모니아 가문의 마카베오 형제들이 시리아에 반란을 일으켜 기원전 165년에는 독립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침입으로 다시 속국이 되어버렸다.
이두매아 출신 헤로데 대왕은 로마 황제의 총애를 받아 유다의 왕에 등극하여 기원전 37년∼4년까지 예루살렘을 통치했다.
헤로데 대왕이 사망한 후 아들 안디바스(재위 기원전 4∼서기 37년)와 아그리파 1세(재위 37∼44년)를 거쳐 44년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로마의 행정권에 속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66년에 로마에 항거하는 독립전쟁을 벌였지만 로마의 티투스 황제에 의해 70년에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다.
바르코시바가 주도하여 로마에 대항한 두 번째 전쟁이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일어났지만 또다시 실패하였고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유다는 로마의 군사식민지로 더욱 악화되었다.
그때부터 예루살렘 시가지는 유대인들이 얼씬도 못하게 되었으며 시가지에는 로마 신전과 광장들이 들어서 점차 로마 양식으로 변해갔다.
예루살렘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가족명인 엘리우스(Aelius)와 로마 수호신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의 이름을 따서 ‘엘리야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 식민지로 명명되었다.
성전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거의 같은 장소에 네 차례 건립되는 수난을 겪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전 지역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306∼337년)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325년 이후였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시가지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있는 유서 깊은 지역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와 에우도키아 황후, 그리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많은 교회들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614년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화려했던 비잔틴 시대는 막을 내렸다.
638년에 아랍인들이 예루살렘에 침입한 후로는 이슬람교도들의 도시로 변모하였다.
교회는 대부분 파괴되거나 아니면 사원이슬람으로 그 모습이 바뀌어버렸다.
칼리프 압드 엘 말릭(재위 685∼705년)은 예루살렘 성전이 자리했던 곳에 이슬람교 사원을 새로이 건립했고, 그때 이후로 오늘날까지 계속 이슬람교 대사원이 위풍을 드러내고 있다.
카이로 출신의 칼리프 엘 하킴은 예루살렘 내의 모든 교회를 파괴하도록 했으며 그리스도교인들을 혹독하게 박해했다.
예루살렘을 되찾은 것은 십자군 전쟁 때로 1099년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이 그리스도교인들의 활동지가 되었다.
그러나 불과 90년 후인 1187년 살라딘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다시 이슬람교도들의 활동지가 되어버렸고, 십자군은 1291년에 완전히 팔레스타인을 떠났다.
1516년부터 약 400년 동안은 터키계 이슬람교도들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전 지역을 통치하였다.
지금의 성전은 7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건립한 것이다.
성전은 해발 750m나 되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성전보다 약 60m가 더 높은 올리브 산으로부터 넘어오는 아침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